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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살람, 중동] <8> 이란 떠나 아라비아반도 오만으로

아랍의 푸짐한 인심에 무한감동 안고…

이란에서의 마지막 도시 반다르압바스는 이란에서도 가장 독특한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찬물은 아예 나오지 않을 만큼 모든 곳이 다 뜨겁다. 무더운 데다 항구도시라 습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곳을 걸어다닌 이유는 독특함 때문이다. 검은 차도르 대신 그들만의 독특한 차도르를 입은 여자들 때문에 이곳이 낯설게 느껴졌다.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쓴 꽃무늬 천은 눈 부위만 뚫려 있는데 그것마저 망사로 감싸고 있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머리카락뿐 아니라 눈썹과 솜털까지도 가려야 하기 때문이란다. 계단은 오를 수 있을지 염려가 된다. 섭씨 45도가 넘는 무더위에 그런 걸 뒤집어쓰고 다니게 하다니, 무엇이 그들을 가두는 걸까. 이란에서의 마지막 날까지도 이런 것들이 날 힘들게 한다.

이란 반다르압바스의 여인들은 독특한 차도르로 얼굴까지도 전부 가리고 다닌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란은 페르시아풍 푸른 장식과 흙집들, 그리고 깐깐한 종교 아래 관대한 이란 사람들이다. “호대패스(안녕), 이란!”

배낭을 짊어지고 간 항구에서 한참을 기다려 간단한 여권 검사를 받은 뒤 이란을 떠난다. 이란 돈이 하나도 남지 않아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승선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이란은 내게 풍부한 식사를 제공했다. 배에서 주는 음식은 아주 훌륭했다. 다음날 일어나 마주한 곳은 아랍에미리트(UAE)였다. 수출입이 왕성한 이곳의 컨테이너박스를 옮기는 기중기를 보니 다른 나라에 왔음이 실감난다. 갑자기 너무 현대적인 도시에 도착해서 그런지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배 안에서부터 눈에 띈 하얀색의 아랍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있는 아라비아반도에 도착한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도 잠시,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아침 8시에 도착했지만 11시는 돼야 나올 수 있었다. 사람은 많지 않은데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기실은 여자·남자 따로 구분돼 있다. 여자대기실에서 아이들과 놀며 지루한 시간을 조금이나마 때운다.

정확히 말하면 이곳 항구는 아부다비에 속한 곳이다. 오만으로 가기 위해선 두바이로 가야 한다. 배에서 만난 사람이 내 사정을 듣더니 “동생이 두바이에 사는데 그곳으로 가니까 태워주겠다”고 선심을 베풀었다. 이란 사람인 그는 막 이란을 떠나온 내게 새삼 이란 사람들의 따뜻함을 떠올리게 했다. 그의 동생집에 가서 가족들로부터 환영과 함께 맛있는 밥과 푸짐한 과일로 대접을 받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그의 동생은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줬다. 그들과 이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니 마치 나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란을 떠나 두바이에 도착한 뒤 그곳의 이란 지인한테서 대접받은 식사는 이란의 ‘온기’를 끝까지 느끼게 했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는데 이란 화폐와 달리 이곳은 숫자 ‘0’이 너무 적었다. ‘디람’이라는 화폐단위를 쓰고 1디람으로 콜라 하나를 사먹을 수 있다. 이란에서는 5000리알로 음료수를 사먹었는데, 갑자기 사라져버린 숫자 ‘0’의 부재를 새삼 느낀다.

5시에 출발하는 막차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두바이에서 하루를 묵고 내일 아침 출발하기로 한다. 두바이는 내가 어렸을 때 참가한 과학상상그리기대회를 연상시킨다. 어린아이가 상상으로만 그린 건물들이 이곳에서는 현실이 돼 있었다. 더운 것은 마찬가지이나 두바이는 어딜 가든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세금이 없어서 그런지 물건들도 다 저렴하다. 하지만 내가 머물 만한 저렴한 숙소는 없다. 제일 싼 호텔을 찾아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하타행 버스에 오른다. 하타로 버스가 들어서기 전에 내려서 걸어가면 오만으로 가는 국경이란다. 두 시간 반 정도를 가서 내린 곳은 삼거리였다. 문제는 이곳에서는 국경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히치하이크를 해야만 한다. 시크교를 믿는 인도 사람이 운전하는 화려한 트럭을 겨우 만났다. 그 트럭이 오만 국경까지 데려다 줬다. 하지만 트럭 대기 줄이 너무 길어 나는 일단 트럭에서 내려 걸었다. 여행비자가 없는 오만은 대충 짐 검사를 마치고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때 발견한 ‘무스카트’이라고 적힌 버스가 너무 반가웠다. 내 짐을 검사한 오만 사람이 그 버스 운전사와 친한지 이야기를 하더니 타고 가란다. 난 버스 운전사와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결정되었다. 드디어 오만이라는 나라에 가게 되는 것이다.

오만 전통의상 차림의 남자가 건물 입구에 서 있다. 오만 남자들은 깨끗한 흰옷을 입고 모자를 쓴다.
무스카트으로 가는 도중 버스가 소하르라는 곳에 잠시 멈췄다. 알라딘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인데 너무 습해 카메라 렌즈에 김이 서릴 정도다. 마치 사우나 같다고나 할까.

버스에서 친해진 알리라는 친구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만 사람인데 애 아빠라며 자랑을 했다. 그는 마치 라디오를 먹은 사람 같았다. 버스 안에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중계방송을 큰소리로 하는데 지치지 않는 에너지가 놀라웠다. 그의 입을 막으려면 “턴 오프(Turn off)”라고 말해야 한다. 알리와 신나게 웃고 떠들며 노는 동안 세 시간도 금세 지나가 벌써 무스카트이다. 무스카트에선 알리의 도움을 받는다. 늦게 도착한 데다 대중교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알리의 차가 그곳 주차장에 있으니 그 차로 이동한다. 내 숙소를 먼저 알아본 뒤 저녁을 알리 일행과 같이 먹는다. 알리 덕분에 남자들만 가는 무용수가 있는 술집에 들어가 봤다. 스트립바에 비하면 옷을 거의 다 입고 추는 것이지만 이들 문화권에서는 굉장한 ‘퇴폐술집’인 셈이다. 빵떡모자를 쓴 오만 남자들이 일제히 무대 방향으로 시선을 집중해 무용수만 바라보는 광경이 우습게 느껴져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다. 중국 여자가 노래하는 술집은 훨씬 나은 분위기였다. 알코올이 들어 있지 않은 맥주만 판매하는 이란에서 온 나는 비로소 진짜 병맥주를 마셨다. 초록빛 병에 하얀 별이 새겨진 맥주를 이곳에서 만나다니, 신나게 마셨다.

무스카트도 꽤 재미난 곳이라 생각해 하루 더 묵기로 하고 다음날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갔다. 무리한 일정으로 이란에서 오만까지 왔으니 좀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늦은 아침에 일어나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식당을 찾아 나선다. 오만은 내게 식당을 고를 수 있는 인내심을 주진 않는다. 

저녁이 되니 오만의 하늘이 붉게 물든다. 하늘과 똑같이 붉게 물든 성 위로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해가 중천에 뜬 그 시간 모든 곳이 뜨겁게 달궈져 있다. 가장 가까운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숙소에서도 느낀 점인데 일하는 사람들이 다 외국인이다. 이를테면 파키스탄이나 인도 사람인 것이다. 분명 오만 사람들과 다른 생김새다. 옷도 전혀 달라 쉽게 구분이 간다. 오만 사람들은 하얗고 깨끗한 아랍 전통의상을 입고 빵떡모자를 쓴다. 그럼 이제 오만 사람들을 찾아 나서 볼까나.

시내버스가 없는 이곳에서는 택시를 타거나 히치하이크를 한다. 처음엔 잘 몰라서 택시를 탔다. 처음 만난 오만 사람은 택시 기사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만 사람들이 유일하게 직접 일하는 직종이 택시 기사란다. 다른 노동은 전부 외국인이 한단다. 살짝 의아해하면서 수크르(시장)에 내렸다. 정말이지 어디를 가든 다 외국인이 일을 하고 있었다. 오만 사람들은 오만하게 놀기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왕국인 오만은 대표적 산유국답게 부유한 자국민과 일하는 노동자가 구분되어 있다.

내가 어디를 가고 싶든 오만 사람에게 말만 하면 택시처럼 데려다 주었다. 심지어 같은 방향이 아닌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만 사람들의 친절은 끝이 없다. 그 친절의 절정을 보여준 친구가 있다. 히치하이크로 만난 그 친구는 내가 원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이드까지 자청했다. 차로 다니며 이곳저곳 둘러보니 참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힘들게 걸어다녔으니 가끔은 편해도 되겠지.

그렇게 친절한 오만 친구는 헤어질 때 언제 사왔는지 선물까지 주었다. 여행자로서 그의 친절함을 그냥 쉽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여행자는 이곳에 머물 수 없고 언젠가는 떠나야 하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또 여행자의 경계심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것은 여자 혼자 여행하기 위한 철칙일 것이다. 그 친구는 오만의 왕자였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걸 뒤로하고 난 혼자서 밥을 먹는다.

저녁이 되니 선선한 바다 바람과 함께 걸어다닐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언제나 쓸쓸한 발걸음으로, 하지만 자유로운 바람으로 나아간다.

강주미 여행작가·‘중동을 여행하다’ 저자 grimi7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