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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넓은 초원 평화로운 양떼들, 내 마음도 고요하다

중국 네이멍구 후룬베이얼 초원

“뭐 특별한 해외 여행지가 없을까.”

휴가철에 이런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 중국 북부 네이멍구자치구다. 아직까지는 해외 여행지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색다른 여행’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맞을 듯하다. 하늘과 맞닿은 드넓은 푸른 초원과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떼, 해질 무렵 겔(몽골인 이동식 가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먼발치에서 보고 있으면, ‘오래전 우리가 살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원초적인 향수가 느껴진다. 특히 이곳은 7∼8월에도 평균기온 20도를 유지하는 데다 습도도 낮아 맑고 쾌적해 여름철에 방문하면 좋다. 남들이 많이 가지 않았기에 더욱 호기심이 자극되는 곳, 중국 네이멍구 동북부 초원 후룬베이얼(呼倫貝爾)을 다녀왔다.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후룬베이얼 대초원은 재충전을 위한 여행으로 적합한 곳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원, 풀을 뜯는 양떼, 그 위를 흐르는 고요는 여행객에게 마음의 평안과 함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초원과 양떼가 ‘작품’인 후룬베이얼 초원

그동안 외신에서만 접한 네이멍구는 기자에게는 낯선 이방 지역이다. 중국 북쪽 국경 지대에 몽골과 러시아와 인접해 있는 소수민족 몽골족의 자치구다. 몽골어로는 ‘외뷔르 몽골’이며, 한족이 주민의 80%를 차지한다.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약 600만명의 몽골족이 거주하는 곳이다.

기자가 베이징을 거쳐 2시간여 비행 끝에 내린 곳은 몽골 유목문화의 발원지로 알려져 있는 네이멍구 동북부에 위치한 후룬베이얼. 후룬베이얼공항이 위치한 곳은 시의 행정 중심지인 하이라얼이다. 비가 오는 저녁 무렵에 일행이 내린 후룬베이얼공항은 우리나라의 시외버스 정류장 정도로 생각될 만큼 아담했다. 하지만, 막상 시내로 들어서자 뜻밖에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야간 조명은 우리나라의 연말 도심 거리처럼 화려했다. 삼성전자 대리점도 눈에 들어온다. 최근 개발 붐이 일면서 급속도로 현대화하고 있다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다.

이틀째 초원 대장정에 올랐다.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후룬베이얼 초원은 칭기즈칸 어머니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칭기즈칸이 전쟁해서 패하면서 어머니와 아내와 함께 이 초원에서 힘을 비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몽골인들에게는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회복시켜주는 곳으로 성스럽기까지 하다. 

초원을 달리다 두 차례 몽골인 거주지를 방문했다. 이들의 손님 맞이는 이방인에게는 재밌고 독특하게 다가온다.

전통가요를 부르며 환영을 표시한 뒤 방문객에게는 일일이 ‘말에서 내리며 마시는 술’이라는 의미의 하마주(下馬酒)를 건넨다. 조그마한 술잔에 오른쪽 손가락 끝으로 술을 묻히고 하늘에 한 번, 땅에 한 번, 이마에 한 번 튕겨낸 후 술잔을 비우도록 하는데 몽골족의 환영식인 셈이다. 받은 잔은 그 자리에서 다 비우는 게 예의라고 한다. 또 특별한 손님에게는 어린양을 통째로 구워낸 한 상 가득한 요리를 대접하는 풍습이 우리나라 집들이와도 닮았다.

이곳의 문제는 겨울철이다. 겨울 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건허(根河)라는 지역은 영하 48도까지 내려간다고 가이드는 엄살을 떨었다. 부족들은 겨울이 되면 다른 지역 친척집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돼야 다시 이곳으로 온다고 한다. 특히 이곳은 유독 한국인 관광객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한국 유학생과 기업 주재원 방문을 제외하고, 순수 한국인 관광객으로는 기자 일행이 온 날 겨우 100명을 넘었다는 것이다.

◆중국 속 자리한 국경 러시아 마을 먼저우리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을 달려 후룬베이얼의 다른 도시 건허와 어얼구나(額爾古納)를 거쳐 마지막 여행지로 찾은 곳은 ‘동아시아의 창’이라 불리는 먼저우리(滿洲里). 네이멍구자치구 중에서도 제일 북쪽 러시아 국경에 있어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마을이다. 중국 영토가 틀림없지만 대부분 러시아 사람들이고 러시아 말만 들리는 지역이다.

이 도시의 다른 이름은 ‘환상의 도시’. 여행객에게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주기 때문. 낮에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건물들이 밤이 되면 화려하게 바뀐다. 시내 모든 건물에 조명이 설치돼 있어 야경이 압권이다. 볼거리 중 대표적인 곳은 러시아 전통인형 광장. 인형 광장에는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을 크고 작은 모형으로 꾸며 놓았다. 전통적인 모양으로 된 것, 세계 유명인물을 본뜬 것 등 각종 인형 천지다. 먼저우리 외곽에 있어 찾아가기가 조금 어렵다. 외국인은 택시에 타서 “타오와광창(套娃廣場: ‘타오와’는 마트료시카의 중국어 표기)”이라고 말하면 된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러시아와의 국경 검문소 앞을 찾았을 때 일행 중 한 사람이 “남북이 통일되면 기차나 자동차로 이곳 먼저우리 국경을 넘어 러시아를 거쳐 북한을 통해 한국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낯선 이방 도시가 갑자기 정이 가는 곳으로 느껴졌다.

일행의 이번 후룬베이얼 여행을 안내한 신길아크(28)씨는 이곳 소수민족 어원커족으로 네이멍구 민족대학을 졸업한 인재이다. 그는 6년 전 상명대 한국어학당에서 2년간 공부한 이력이 있다. 그는 기자에게 “세계일보 발송부에서 1년여 아르바이트를 한 인연이 있다”며 기자를 “형”이라 부르며 살갑게 따랐다. 귀국한 지 오래돼 한국말을 차츰 잊어버리는 게 속상해 매일 인터넷을 통해 한국 방송을 본다고 한다. 양 800마리, 소 50마리를 보유해 이곳에서 꽤 살 만한 편이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다.

“네이멍구 동북부 지역에도 한국인 관광루트가 열려 네이멍구 1호 한국 관광객 가이드로 양국 친선에 기여하고 싶어요.”

후룬베이얼=글·사진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여행정보

서울에서 후룬베이얼로 가는 직항로가 없다. 베이징에서 에어 차이나(중국국제항공)를 이용하면 2시간여 소요된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인천국제공항과 네이멍구의 주도 후허하오터를 잇는 부정기적인 전세기는 개통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