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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화'만 외치던 軍…정작 '안전'은 총 맞았다

예비군 훈련시스템 구조적 문제

지난 13일 서울 내곡동 동원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를 난사한 최모(23)씨가 자신의 K-2 소총을 놓았던 총기 거치대의 모습. 군 관계자는 최씨의 소총이 총구 방향을 좌우로 돌리지 못하도록 안전고리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범준 기자
13일 발생한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 사건으로 예비군 제도 전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싸워 이길 수 있는 예비전력 정예화’를 강조한 군 당국이 예비군 훈련의 안전 문제는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의 일탈 못지않게 예비군 훈련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가 근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또 예비군 훈련을 관리·통제하는 향토사단의 인원이 부족하고 예비군의 과거 현역 복무 기록을 공유할 수 없다는 점도 악성 총기사건의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부터 국방부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른 군 규모 감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예비군 훈련을 크게 강화했다. 예비군들은 입소한 순서대로 분대 단위의 조를 편성해 훈련 과제를 선택하고 사격, 시가지 전투, 안보교육, 병 기본훈련 등의 훈련을 이수한다. 훈련 성과가 우수하면 2시간 일찍 퇴소가 가능하다. 대신 입소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훈련 참여를 원천 차단했다. 대학생 예비군의 동원훈련 부활을 검토하고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하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예비군 훈련 시스템의 문제점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특히 예비군 사격훈련이 그랬다.

과학수사대 수사관 2명이 총기난사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인 14일 오후 서울 내곡동 송파·강동 동원예비군 훈련장 내 사격장을 살펴 보고 있다. 군은 이날 언론에 사고가 발생한 현장을 공개했다.
김범준 기자
예비군들은 현역 시절보다 사격 훈련에 대한 긴장감이 떨어져 철저한 사격 통제가 중요하다. ‘예비역 병장’이라고 해도 민간인이 되면 총기 접촉 빈도는 낮아진다. 따라서 현역 시절보다 더 강력하게 사격장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현재 예비군 훈련을 담당하는 부대에는 효율적인 훈련 관리를 위한 병력이 부족하다. 일선부대 한 지휘관은 14일 “전방부대는 병력이 많기 때문에 사격훈련 때 사로별로 안전통제를 할 조교를 충분히 배치할 수 있지만, 사건이 발생한 52사단 같은 향토사단은 병사가 턱없이 부족해 예비군 통제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보고에 참석한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도 “국방개혁으로 군인들 숫자를 줄이며 제일 먼저 예비군훈련 담당 향토사단의 인원부터 감축해 훈련장 배치·통제 인원이 충분히 배치되지 못했다”며 “예비군 담당 인력을 보강해 현장에서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사건 당시 훈련장에서는 사격 관련 안전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통제도 허술했다. 특히 실탄 지급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실탄 9발을 지급해야 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지휘관 재량이라는 이유로 10발이 든 탄창 하나를 지급했다.

총기난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내곡동 송파·강동 동원예비군 훈련장에 입소했던 예비군들이 14일 군 부대 버스를 타고 퇴소해 송파구 복정역 인근에 내린 뒤 귀가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현역시절 관심병사로 분류됐던 예비군의 특별관리 필요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재로선 예비군 부대 권한 밖이다. 현역 복무 당시 인사 기록이 예비군으로 편성될 때 훈련 부대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병무청 관계자에 따르면 병무청은 전역자의 현역 복무기록을 받아 입대일, 전역일, 전역계급 등 예비군 편성에 필요한 기초자료만 예비군 부대로 보낸다. 이 때문에 군 안팎과 정치권에서는 현역시절 복무 부적응자가 예비군 훈련 때 사건을 일으킬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현역시절 복무기록을 예비군 부대가 살펴보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군 당국은 ‘인권침해’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현역시절 정신병력 등을 예비군 훈련에 활용하는 문제는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만약 이런 자료가 예비군 부대로 넘어가거나 유출된다면 인권침해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부작용이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김선영 기자, 박수찬 세계닷컴 기자 007@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