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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무더위 싹 날리는 세계의 공포 요괴들

사진=KBS 2TV 드라마 '2009 전설의 고향' 포스터

우리나라에서는 귀신, 요괴 혹은 괴물이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흰 소복에 긴 머리를 늘어트린 처녀귀신을 떠올린다. 저승사자의 이미지는 검은 도포를 입고 검은 삿갓을 쓴 창백한 남자다. 하지만 서양문화권에서 저승사자는 흔히 검은 후드를 쓰고 큰 낫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이 다르다보니, 전 세계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을 말하는 방식은 모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무더위를 한 풀 꺾어줄 세계 공포의 존재들에 대해 알아봤다. 

사진=일본 애니메이션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 일본 - 오니, 덴구 등 토속 요괴들의 천국

최근 초등 저학년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요괴워치'는 제목 그대로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하는 내용의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은 예로부터 귀신과 요괴, 온갖 괴담들이 차고 넘쳐나는 나라다. 8~90년대에 일본은 특히 세계적인 오컬트(초자연) 붐의 영향에 힘입어 만화 ▲이토 준지 시리즈 ▲영화 '링' 등 이른바 'J-호러' 전성시대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가 흔히 한국 고유의 전통 요괴라 여기는 도깨비는 삐죽한 뿔에 험상궂은 얼굴, 호랑이 가죽을 두르고 도깨비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도깨비의 모습은 일본의 요괴 '오니'에 가깝다. 우리의 도깨비가 씨름을 좋아하고 사람 골려주기를 좋아하는 짓궂은 요괴인데 비해 일본의 오니는 호전적이고 흉악하며, 어린아이를 납치해간다고 알려져 있는, 악귀에 가까운 요괴다.

이 밖에도 일본에는 덴구, 오로치 등 수없이 많은 요괴들이 존재하며, 현대의 각종 문화콘텐츠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요괴들은 전통의 현대화, 세계화에 성공한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사진=영화 '강시선생 일미도인' 포스터

◆ 중국 - 콩콩 뛰어다니는 시체, 강시

중국의 '강시'는 사후강직으로 굳은 시신이 되살아나 사람을 공격한다는 요괴다. 죽은 이가 되살아나 사람의 피를 먹는다는 점이나 혹은 밤이 되면 관에 들어가 잠을 잔다는 등 강시는 여러모로 좀비, 흡혈귀와 비슷한 특성을 지녔다. 다만 강시만의 특징은 만주족 모자, 이마에 부적을 붙이면 움직일 수 없고, 콩콩 뛰어다니는 움직임 등이 있다.

1980년대 홍콩 강시 영화들이 대히트를 치며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강시는 원래 객사해 묻히지도 썩지도 못한 시체에 원혼이 붙어 생겨났다고 한다. 때문에 객사나 변사한 시체를 잘 수습해 염해줘야 한다는 교훈적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중국의 요괴가 강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유명 고전소설 '서유기' 역시 주인공부터 주변인물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요괴로 묘사된다. 이외에도 중국에는 고대부터 각종 귀신과 신수들이 다양하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사진=미국드라마 '워킹데드'

◆ 아이티 -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해나가는 괴물, 좀비

좀비는 음침한 신음소리, 느릿느릿한 동작에 살아있는 사람을 먹는 습성을 지닌 괴물이다. 헐리웃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좀비는 미국 고유의 괴물처럼 보이기도 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좀비의 기원은 서아프리카 토속신앙과 천주교가 결합, 아이티에서 발생한 부두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좀비는 특정한 의식과 약물을 이용해 희생자를 가사상태로 만든 후 노예로 부리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는 단순한 전설만은 아니다. 실제로 중앙아메리카나 아이티에는 좀비를 활용하는 노예농장이 실존하기도 했다.

영화감독 조지 로메로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좀비의 이미지를 정립, 헐리웃 좀비영화의 아버지라 불리게 됐다. 조지 로메로의 좀비들은 느리고 둔하며 인해전술로 사람들을 습격했다. 이 때문에 한 둘 쯤은 쉽사리 주인공들에게 제압당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좀비가 모여 있다면 그 수에 압도당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 '새벽의 저주'에서 최초로 달리는 좀비가 등장, 괴성을 지르며 전력 질주하는 모습을 보여 관객들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 이후 ▲28일후 ▲웜바디스 등 최근에는 더욱 자극적인 요구에 의해 전력질주는 물론, 말을 하거나 심지어 사랑을 하기도 한다. 

사진=JTBC 방송 캡처

◆ 미국 - 인터넷을 통해 불어나는 도시괴담, 슬렌더맨

헐리웃 영화나 각종 문화콘텐츠들을 대량 생산해내고 있는 미국에는 의외로 미국 고유의 전통이 있는 귀신, 괴물이 많지 않다. 영화 속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 혹은 '제이슨' 등이 대표적인 호러 캐릭터로 손꼽히지만, 최근 미 대륙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공포 캐릭터는 단연 '슬렌더맨'이다.

슬렌더맨은 어두운 정장 차림의 남자로, 비정상적으로 길고 얇은 팔과 다리, 이목구비가 없는 얼굴이 특징이다. 슬렌더맨은 등에서 촉수가 뻗어 나오기도 하며, 주로 아이들을 납치한다고 알려진 신종 도시괴담 속 귀신이다.

주목할 점은 슬렌더맨이 비교적 최근에 탄생한 공포의 대상이라는 것. 슬렌더맨 괴담은 시기를 잘 탄 덕분에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이 새로운 도시괴담에 세계 각국의 젊은 층들은 열광했고, 온갖 합성사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괴수나 요괴들이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민담, 설화 등을 통해 전해져왔다면 슬렌더맨은 인터넷문화로 괴담이 부풀려져가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사진=MBC '서프라이즈' 방송 캡처

◆ 이집트 - 고대 장례문화가 왜곡돼 만들어진 괴물, 미라

되살아난 망자(Undead)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괴물은 좀비, 그리고 미라(Mummy)가 있다. 각종 영화나 만화, 게임 속에서 미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걸어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미라는 이집트가 배경인 모험물, 공포물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너무나 유명한 괴물이다.

사실 이집트의 미라는 괴물이 아니라 언젠가 부활할지 모르는 망자를 위해 '보존된 시신'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망자의 부패를 막기 위해 시신의 코를 통해 뇌를 꺼내고, 적출한 내장을 각각 따로 보관했는데, 이로 인해 고대 이집트의 외과 의학이 발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서구 문화권에 알려지며 왜곡돼 '피라미드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침입자들을 공격하는 괴물'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됐다.

본래 미라라는 단어의 의미가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남은 시체'를 일컫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라의 원형, 유례는 꼭 이집트라고 볼 수만은 없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온전히 보존된 시신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 동, 북유럽 - 보름달이 뜨면 변신하는 원조 짐승남, 늑대인간

늑대인간은 보름달이 뜨면 온 몸에 털이 돋아나고, 손발톱이 자라 늑대의 모습을 하고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늑대인간으로 잘 알려져 있는 괴물 위어울프(Werewolf)는 동유럽의 벨라루스가 설화의 근원지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늑대인간이 연쇄살인범에 대한 형상화라는 말이 있는데,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알고 보니 잔인무도한 괴물이었다는 것, 일정한 간격으로 주기적 살인을 한다는 것이 늑대인간의 특징과 닮았다. 이외에 광견병에 걸린 환자를 오해해 생겨난 괴담이 늑대인간이라는 설도 있다.

늑대인간 역시 다른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헐리웃 영화를 통해 현재의 이미지가 정립됐는데, 최근에는 주로 흡혈귀들과 대립하는 세력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반항적이고 거친 모습으로 표현된다. 지난 2000년대 후반 소설 원작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는 여주인공을 지키는 거친 짐승남으로 등장,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괴물들…이들과 함께 무더위를 이겨내 보자

이밖에도 이슬람 문화권의 '구울',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목 없는 기사 '듀라한' 등 세계 각국마다 온갖 무섭고 흉포한 요괴, 괴물들이 존재한다. 특히 머나먼 과거를 되짚어보며 고대의 괴물, 귀신들에 대해 알아볼수록 선조들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고대의 괴물들이 대체로 되살아난 망자이거나, 혹은 밤의 어둠을 틈타 활동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인류가 과거부터 어둠, 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해왔다고 추측할 수 있다. 현대에는 이들에게 새로운 이미지가 덧붙여지며 재해석되거나, 문화콘텐츠로 소비되며 공포심뿐만 아니라 애착을 가지게 하기도 한다.

여름에 공포심을 느끼면 체내온도가 올라가지만 체외온도는 낮게 느껴지는데, 이 때문에 싸늘하고 소름이 돋아 한결 서늘해지기도 한다. 현실 속에서는 볼 수 없지만 영화나 소설, 만화, 게임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 속에서 귀신과 괴물들을 만나보는 것도 여름철 무더위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라이프팀 차주화 기자 cici060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