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애의 영화이야기] Bifan 첫 개막작 '달 세계 여행'을 곱씹으며… 입력 2015-07-24 16:19:04, 수정 2015-12-05 14:29:46 
세계 최초의 SF영화 '달 세계 여행'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고는 한다. 지구상 어딘가에 슈퍼히어로들이 살고 있고, 또 누군가는 시간 여행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외계인들은 이미 여러 번 지구를 다녀갔을 지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실존하는 세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부터 봐온 SF영화나 판타지 영화가 낳은 일종의 '부작용'일까.
내일 폐막하는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소식을 접하다 보니 문득 19년 전 1회 소식을 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한 편의 영화도 함께.
바로 제1회 Bifan(당시엔 Pifan이었다!) 개막작이었던, 세계 최초의 SF영화 '달 세계 여행'(감독 조르주 멜리에스, 1902)다.
당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막 시작된 직후로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가 많지 않던 시기였다.
그리고 요즘 같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도 시작되기 전이었고, 영화관과 TV, 출시되는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나마 비디오 테이프로 출시되는 영화들은 대부분 국내 개봉 영화들이었으니, 국제영화제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국내 미개봉 영화들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개막작 '달 세계 여행'은 영화 역사책에서 처음 알았고, 해외 출시 비디오를 복제한 저화질 비디오 테이프로 본 고전영화였다. '세계 최초의 SF영화'라고 평가받는 고전영화를 큰 화면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1902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당시 다른 영화들처럼, 흑백영화에 무성영화였고, 단편영화(14분)였다. 당시에는 여러모로 화제가 된 영화였고, 현재에도 영화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화로 평가되지만, 요즘 일반 관객 시선으로 보면 너무 짧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필자가 학생들과 이 영화를 보다보면 어김없이 웃음이 터지는데, 동시에 신기해하는 반응도 반드시 나온다. "저런 특수효과는 어떻게 한 거예요?"라는 질문과 함께. 
컴퓨터 그래픽이 존재하지 않던 1902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달랑 14분 안에 달에 다녀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 여러 특수효과들이 등장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관객들에게 신기함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효과들은 대부분 멜리에스가 ‘달세계 여행’ 이전 영화에서부터 사용했던 효과들이었다.
일단 본인 소유의 극장에서 마술쇼를 공연하던 전직 마술사답게 조르쥬 멜리에스는 연극적인 무대를 활용한다. 무대 뒤편에서 지구 모양을 그린 장치가 떠오른다거나, 온통 버섯으로 뒤덮인 달의 모습은 무대 세트와 장치들로 표현됐다.
멜리에스는 유럽 최초로 영화 전용 세트장을 만들기도 했는데, 햇빛을 충분한 조명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천정과 벽이 유리인 유리 세트장 안에 연극적인 무대들을 세팅했다.
그리고 멜리에스가 세계 최초로 사용한 기법으로 평가받는 여러 기법들도 이용했다. 카메라를 잠시 멈췄다가 촬영하는 ‘스톱 모션 기법’은 순식간에 달의 눈에 박힌 우주선의 모습이나, 마술 우산을 향했을 때 순식간에 사라지는 달에 사는 외계인 등 주소 사라지거나 순간 변신이 필요한 부분에 이용됐다.
이미 촬영된 필름 부분에 다시 촬영하는 (혹은 이미 인화된 필름에 재 인화하는) '이중 노출 기법'은 당시 수동 카메라였던 영화 카메라로 일단 촬영을 한 후, 촬영한 분량만큼 필름을 되돌리고, 다시 촬영하는 방법이었다. 달 도착 직후 밀려온 피곤함에 잠이든 일행들 머리위로 혜성이 지나가고, 북두칠성이 떴다 사라지고, 지구 도착 과정에서 바다 속으로 우주선이 가라앉는 상황 등에 이용되었다. 미리 잘만 계산해서 촬영하면, 두 겹, 세 겹, 네 겹 겹쳐 촬영이 가능했고, 그만큼 관객들은 신기한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그밖에 영화적 페이드 인, 페이드 아웃, 디졸브 등 사실 기본적인 영화 특수효과 대부분 은 멜리에스가 처음 사용했다. 다른 특수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카메라만 이용하면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는 기법이었다.
카메라를 이용해 영화적 마술을 선보였던 '달세계 여행'은 다른 관점에서는 '유럽중심적 인종차별주의' 세계관을 담은 영화로 평가할 수도 있다.
달에 살고 있던 외계인들은 해골이 그려진 의상을 입고 있는데, 그들의 외모와 행동은 소위 '식인종' 혹은 무자비한 '미개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낯선 손님에게 적대성을 보이고, 우리의 지구인들 역시 '달인'들을 응징한다. 영화 속 달의 모습도 딱 밀림의 모습이다. 세계 곳곳에 확장한 식민지인들을 바라보는 폭력성, 미개함 등의 인식이 달에 사는 이들에게도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 조르주 멜리에스(1861-1938) |
멜리에스는 약 10년 동안 50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라진 영화들도 많다. 프랑스가 1차, 2차 세계대전을 겪기도 했지만, 달세계 여행 완성 몇 년 후 파산한 멜리에스는 영화 제작을 그만두면서 본인 스스로 영화들을 폐기처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유럽 여러 지역과 미국 등에서 상영된 영화들이 많았기에, 그곳에 남아 있던 필름들이 현재까지 발굴돼왔고, 비디오테이프, DVD 등으로 출시돼왔다. 2002년에는 수작업으로 흑백 필름을 색칠한 새로운 버전의 ‘달세계 여행’ 필름이 프랑스에서 발굴되어 공개되기도 했다.
올 부천국제판타시틱영화제 소식을 통해 19년 전 과거를 떠올리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달세계 여행의 제작자이자 감독이자 편집자이자 주연배우인 조르쥬 멜리에스는 잘 나가던 마술사 출신답게 마술 같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세트장도 짓고, 영화사도 차리고, 미국에 지사까지 차렸지만, 영화 활동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결국은 자기 손으로 자신의 영화를 폐기하고 가난 속에 생을 마감했다.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으로 일반인들에게 시네마토그래프를 공개하던 당시 30여 명의 관객 중 한 명이라고도 알려진 멜리에스의 영화들은 국내에 출시된 DVD를 통해서도 만나볼 수 있다.
SF영화나 판타지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110살도 더 된 달세계 여행 감상을 추천한다. 가끔은 단순한 것을 보는 것이 더 즐겁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특수효과의 선조인 한 영화인의 업적을 목격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서일대 영화방송과 외래교수 사진=영화 '달 세계 여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