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만史설문] <93> 원숭이가 만든 바보 한자 ‘속뜻’ 모른 채 ‘여러 뜻’ 아는 체하는 오류 범해서야 입력 2016-01-10 16:11:19, 수정 2016-01-10 20:42:08 요즘 한자 구경 많이 한다. 올해 이름 병신년 때문이다. ‘병든 몸’ 병신(病身)이 몸과 마음의 장애를 가진 이들을 낮잡아 부르는 말로 통용되는 데다, 해 년(年)은 여자를 비하하는 말과 발음이 같다. 병신년(丙申年)이라고 괄호치고 한자를 병기한다. 평소 안 하던 행실이다.
한자어를 이리 많이 쓰면 꼭 오류가 드러난다. 정치가들이 실없는 ‘문자질’로 자주 무식을 드러내는 것처럼, 일부 매체의 ‘바보짓’도 하릴없다. 우리말 중 어떤 말은 바탕에 한자(漢字)가 있어서 그 속뜻으로 여러 뜻을 빚어낸다. 그 ‘한자의 바탕’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속뜻’은 건너뛰고 ‘여러 뜻’을 아는 체하다 보면, 어느덧 봉숭아학당의 웃음꽃 피어난다. “마상봉후(馬上封侯)는 말 위에 올라탄 원숭이 모양의 도자기라는 의미로, 중국에서 승진과 영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주고받던 귀한 선물이다. 말의 등이나 머리 위에 원숭이가 올라탄 형태의 그림을 도자기 위에··· 원숭이는 영장류인 만큼 동물 가운데 인간과 가장 그 형태가 유사한 만큼, (원숭이의) 도움을 받아 승승장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겼다.”
네이버에도 올랐다. 그래서 그럴싸했을까? 이 글 인용한 글이 인터넷에 쫙 깔렸다. 봉후는 ‘원숭이 도자기’다, 원숭이 도움으로 승승장구하자는 기원을 담았다 등등. 언론은 사회의 (말) 선생이기도 하다. 좋은 선생은 좋은 본보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왜 모르는 말을 아는 체 글로 옮겨 제 글 보는 독자들을 바보로 삼을까, 웃자고 하는 짓인가? 중국어에서 ‘말의 등 위’라는 마상(馬上)은 얼른, 빨리 등의 뜻이다. 말 위에서는 뭐든 빨리 해야 실수가 없다. 벌과 원숭이가 말을 탄 그림이나 조각이 있는 도자기를 그들은 ‘마상봉후’라고 부른다. 말 등에 원숭이만 올라탄 것도 있는데 이는 아마 ‘마상후’(馬上侯)이겠다. 벌 봉(蜂)의 중국어 발음은 ‘펭’이다. 벼슬 즉 관직(官職)을 주거나 받는 봉(封)의 발음도 ‘펭’이다. 벌(의 모양)이 벼슬을 받는다는 이미지 대신에 도자기 그림에 들어간 것이다. 또 원숭이 후(?)의 중국어 발음은 ‘호우’다. 높은 벼슬의 이름 후(侯)도 ‘호우’다. 벌(봉蜂)과 원숭이(후?) 그림이 제후 벼슬을 받는(封侯) 뜻으로 비유된 배경이다. ‘얼른 큰 벼슬(제후)을 받으라’는 축원인 것이다. ‘원숭이 도움을 받으라’는 ‘가라사대’의 말씀이 아니다. 말 잔등에 파리 한 마리가 붙어 있는 그림도 있다. 파리를 뜻하는 승(蠅)자의 중국어 발음은 ‘잉’이다. 이겨서 얻다, (그릇에) 가득차다는 뜻의 영(嬴)자의 중국어 발음이 또한 ‘잉’이다. ‘얼른 이겨 바라는 바를 얻으라’는 축원을 말 등의 파리 그림으로 대신한 것이다. 중국어와 중국문화 안으로 한참 깊숙이 들어가야 이해가 될까 말까 한 ‘중국 이야기’다. 게다가 도자기에 축원의 뜻을 담아 선물로 활용한 그들의 전통이다. 우리가 알아서 별 도움이 될 주제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뜻도 모르면서 아는 체 주절거린 것은 무슨 의도일까? 언론의 고객인 독자는 문득 바지저고리가 됐다. 한자와 전통문화를 알려는 뜻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도 없는 이런 얘기로 호사(豪奢) 취향을 만족시키거나 허황된 현학(衒學)을 펴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과 우리 문화의 뜻을 또렷하게 장엄(莊嚴)하자는 것이다. 이런 뜻이 우리 겨레의 진짜 존엄(尊嚴)을 세우는 일이다.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 원장
■사족(蛇足)
또 이 매체는 “착월선후(捉月獮猴)는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라고 썰을 풀었다. 한자사전을 펴볼 줄 알았다면 이런 글 쓸 수 없다. 잡을 捉, 달 月, 죽일(사냥) ?, 원숭이 ?의 뜻에서 그 답이 바로 나온다. 직역하면 ‘달 잡으려던 것(동작)이 원숭이를 죽였다’다. 달 잡으려다 원숭이가 죽었단다. ‘어리석은 원숭이가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고 한다는 의미’라는 그 글과 비교하면 어떤가? 원숭이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우물 속의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죽었다는 고사다. 말의 뜻을 안 다음에 쓰는 것이 글이다.
서너 해 전, 밑도 끝도 없이 ‘아라’가 바다의 순우리말이라는 근거 없는 말이 인터넷 공간에 퍼졌고, 장관이라는 (고위 공직)자까지 공적인 문장에 그 말을 베껴 쓰다 우세를 산 블랙코미디도 있었다. 말은 겨레의 순정(純正)한 뜻을 담는 그릇이다. 흐리멍덩하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