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이익에 말라가는 '지구의 가습기' 습지 [지구 기온 상승 1.5℃ 내로 지키자] 기후변화 막는 ‘마지막 보루’ 습지… 난개발로 생명력 상실 입력 2016-02-03 19:54:54, 수정 2016-02-03 19:54:53
질퍽한 땅 위로 바짝 마른 바람이 불었다. 습지에 발을 내딛자 신발엔 금세 축축한 진흙이 묻어났다. 새끼손톱만 한 게가 빠르게 흙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수심 6를 넘지 않는 해역을 포함해 젖어 있는 땅. 바다와 강, 땅이 만나는 습지는 동물과 식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터전이다. 습지는 기후변화를 조절하는 역할도 해 ‘지구의 가습기’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같은 습지가 지구 상에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난개발로 상당수의 습지가 생명력을 잃었다. 자연을 품은 습지는 기후변화를 막는 마지막 보루다. 세계 습지의 날(2월2일)을 맞아 부산 사하구의 하구습지를 찾았다.
3일 아침, 낙동강 하구습지는 철새들로 붐볐다. 선사시대부터 신라·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이 습지는 오랫동안 철새의 쉼터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습지를 쓸모없는 땅으로 여겼다. 낙동강 하구습지 중 무려 13만1917㎡(약 3만9800평)가 1975년부터 1993년까지 20여년간 도시의 분뇨를 처리하는 분뇨산화분지로 쓰였다. 분뇨해양투기선이 오가는 전초기지 역할도 했다. 1990년대에는 쓰레기 매립장으로도 이용됐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박성배 주무관은 “낙동강 하구는 호주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러시아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철새도래지”라며 “난개발로 망가진 습지를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복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는 세계 습지의 날을 맞아 성명을 내고 “국제적으로 중요한 환경적 가치를 지닌 낙동강 하구는 그동안 어민 반대, 신공항 건설 등의 이유로 람사르 습지 등록 추진이 미뤄졌다”며 “부산시장이 2025년까지 하구둑을 개방하겠다고 한 만큼 낙동강 하구를 람사르 습지로 등록해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구습지를 둘러싸고 여러 도로 공사 계획까지 추진되고 있어 훼손 위협이 크다고 우려하면서다. 습지는 물을 저장하고 정화해 생태계를 유지하고 폭우 때는 홍수를 조절한다.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그 농도를 낮춰 훌륭한 기후변화 대응장치 역할도 한다. 정부는 습지보전법을 만들어 전국의 습지를 관리한다. 그러나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전체 습지의 6.67%뿐이다. 정부가 지정한 습지보호 지역은 36개, 국제사회가 인정한 기준에 맞는 람사르 습지는 지난해 새로 지정된 제주 숨은물뱅듸와 강원 영월 한반도 습지를 포함해 전국 21개에 그친다. 개인 사유지가 포함된 습지는 지주들이 개발이 제한되는 보호구역 지정을 반대하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역개발과 맞물려 보호구역 지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습지보호지역 정밀조사에서 한반도 습지는 보호구역 지정 전후로 생물다양성이 387종에서 871종으로 2배 이상 증가하는 뚜렷한 변화가 포착됐다. 습지보호구역 확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 습지 보호에 힘 실어야 우리나라의 습지는 도시 개발 정책과 맞물려 급격히 줄었다. 환경부 국토·자연환경 자료(2014년)를 보면 1980년대 전체 국토의 0.9%(874.5㎢)를 차지했던 내륙 습지 면적은 2000년대 들어 0.3%(339㎢)로 감소했다. 전체 습지의 61%가 20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연안습지(갯벌)도 1987년 3203㎢에서 2013년 2487㎢로 22.4% 줄었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의 습지보호지역 규모는 국제 평균에도 못 미친다. 세계 평균 보호지역은 육상 15.4%, 해상 8.4%지만 우리나라는 육상 12.6%, 해상 1.41%에 불과하다. 각각 13.9%, 1.4%인 아시아 평균과 비교해도 미흡한 수준이다. 국제사회는 2020년까지 보호지역을 육상 17%, 해상 1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습지를 둘러싼 개발 논란이 반복되면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국제사회는 이명박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4대강 사업’을 습지 훼손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국제 환경단체인 세계습지네트워크가 2012년 제11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 당시 ‘4대강사업’을 세계습지상 반(反)모범사례(회색상) 6건 가운데 하나로 선정했다. 주최 측은 “16개 댐이 자연스러운 물길을 방해해 사업의 목표인 수자원 확보에 오히려 실패하고, 온전한 환경영향평가 없이 진행돼 습지의 장기가치를 훼손했다”고 꼬집었다.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 심윤진 소장은 “세계적으로 보면 1980년 4만여개였던 생태계 보호지역이 2010년 12만개로 양적으론 3배 이상 늘었다”며 “더불어 페이퍼 파크(문서상의 보호지역)도 늘어나 이를 관리하는 예산과 인력의 문제, 이해 당사자의 대립이나 갈등, 보호지역 가치에 대한 인식 등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의 습지보호구역을 확대하고 개발논리 대신 보호정책을 택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준경 공동운영위원장은 “2010년까지만 해도 습지총량제나 보호구역 확대 논의가 활발했지만 4대강 사업과 맞물려 이런 목소리가 사라졌다”며 “환경부가 발표한 정책만 살펴봐도 2010년 습지호보호지역 인센티브, 권역별 습지 인식증진거점센터 9개 설치 등은 6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됐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글·사진 부산=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