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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업무 남녀 영역 사라져 격세지감”

‘여경의 날’ 맞은 맏언니 김해경 경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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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명’

1946년 7월1일 경무부 공안국에 여자경찰과가 신설되면서 처음 일선에 배치된 여경은 100명도 안 됐다. 그러나 70년이 흐른 지금 여경은 1만1738명으로 148.6배나 늘었다. 전체 경찰관 중 여성 비율도 올 들어 처음 10%선을 돌파했다.

제70주년 ‘여경의 날’을 맞은 1일 여경 ‘맏언니’ 중 한 명인 서울경찰청 김해경(57) 경무부장(경무관)을 만나 감회를 들어 봤다.

“1980년 순경으로 처음 경찰에 들어왔을 땐 순찰차를 타고 거리에 나서면 모두가 신기하게 쳐다볼 정도로 여경이 희귀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경찰 업무에서 남녀 영역이 따로 없을 정도라 격세지감을 많이 느낍니다.”

여경 맏언니 중 한 명인 서울경찰청 김해경 경무부장은 1일 “후배들이 남성 위주 조직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멋지게 업무를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제원 기자
그가 지금까지 달려 온 ‘경찰 인생’ 36년에는 애환도 많았다. 범죄자를 잡는 직업 특성상 거친 조직문화 속에서 남성 동료나 민원인, 피의자들과 부대끼며 무시나 차별도 적지 않게 받았다. 김 부장은 “경찰 생활 초창기에는 전체 여경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조직 내에서도 여경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다”며 1995년 방범계장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 “새벽에 사복을 입고 파출소를 순시하면 직원들이 다짜고짜 ‘아줌마, 무슨 일이에요’라고 묻기 일쑤였어요. 그래서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순시를 나갈 땐 꼭 제복을 챙겨 입곤 했죠.”

순경에서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까지 8개의 계급을 거치는 동안 그는 여성청소년 업무를 중심으로 정보, 보안, 경비, 교통, 경무 등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 1984년부터 7년간 청와대에서 대통령 부인 경호를 담당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때는 1999년부터 4년간 서울청 최초의 여경기동대장을 지내던 시절이란다. “여경기동대를 통해 집회 관리에 ‘폴리스 라인’ 개념을 도입했는데 집회 참가자들이 여경들한테 계란을 투척하거나 욕설을 하기도 했어요. 후배 여경들이 쉬지도 못하고 고생이 많았죠. 하지만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던 집회를 ‘무최루탄’으로 대표되는 평화적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그는 남편인 현재섭 부산경찰청 3부장과 함께 최초의 ‘부부 경무관’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경찰관 부부로서 일과 가정을 양립하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여경기동대장 시절 아이가 5살, 3살이었는데, 주말에도 집회현장에 나가야 했죠. 어느날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이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뭘 하고 싶냐는 물음에 ‘경찰을 일찍 퇴근시키겠다’고 말해 가슴이 미어졌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김 부장은 “후배들이 남성 위주 조직에서 여성임을 약점이라고 여기거나 소수자로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을 의식하지 말고 멋지게 임무를 완수했으면 좋겠다”며 “경찰은 어떤 직업보다도 남녀 차별이 작고 보람도 큰 만큼 국민에게 봉사하고 사회정의를 위해 일할 자세가 된 여성이라면 꼭 한번 도전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