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부드러운 남자' 트럼프, '아첨' 에 무너졌나 입력 2017-11-10 13:58:37, 수정 2017-11-10 14:51:4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중국, 일본 3개국 방문을 통해 북한 핵 문제와 무역 현안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했으나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낮추고, 수백조 원의 대미 투자 유치에 성공하는 실리를 챙겼다.
 |
9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환영행사가 끝나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천안문 광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 일본 등 동맹국과의 결속을 다졌고, 이를 토대로 중국에 압박을 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시 주석의 등을 떼밀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중국에 대북 원유 공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그의 제안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미국에서 입만 열면 대북 군사 옵션 동원을 예고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순방에서는 북한에 대화의 손길을 내미는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 강경 일변도의 대북 정책 노선을 수정할지 주목된다.
 |
9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미·중 기업 대표 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를 하며 미소 짓고 있다. 미중은 이날 2천500억달러(280조원 상당) 규모의 무역 협정을 맺었다. |
트럼프 대통령을 맞은 한국, 중국, 일본은 비즈니스맨 출신의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원하는 대미 투자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었다. 특히 중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 금액이 2535억 달러 (약 283조 327억 원)에 달한다. 그러나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가 대부분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에 불과하고, 이 약속이 실제로 이행된다 해도 몇 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이 때문에 중국의 대미 투자 약속은 ‘보여주기’(쇼)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중국은 대미 투자 약속과 함께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입 장벽을 낮추기로 했다. 중국 외교부는 9일 중국의 자체적인 개방 확대 일정표와 로드맵에 따라 은행, 증권펀드업, 보험업을 포함한 금융업 분야에서 시장진입 요건을 대폭 완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점진적으로 자동차 수입 관세도 적정 수준으로 낮추고, 내년 6월까지 중국 내 자유무역지대에서 신에너지 차량 등의 외국계 자본 지분 제한을 완화하는 시범 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
한 곳 바라보는 트럼프·시진핑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미·중 양국 간 경협을 다짐했지만 막후에서는 통상 문제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고, 양국 간 통상 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NY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지적 재산권 침해 조사를 시작하고, 미 의회는 중국 자본의 미국 기간시설 투자 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NYT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의 국익을 지키는 ‘강한 남자’를 자처해왔으나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는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했다. 그는 한국 방문을 통해 자신과 정치적 노선 및 대북 정책이 다른 문재인 대통령을 최대한 배려했다. 그는 또 한국 국회 연설을 통해 자신의 호전적인 이미지를 상쇄하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
9일 오전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 환영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박수를 치고 있다. |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시 주석과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 데 주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을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 등 시 주석의 비위 맞추기에 나섰다. 한·미·일 3국도 화려한 의전을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간파하고, 그를 극진히 대접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끌어냈다고 워싱턴 포스트(WP)가 보도했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약간의 아첨이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는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 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화려한 행사와 칭찬으로 가득 찼지만, 미국에 이득이 될 실질적인 새로운 거래는 없었다고 WP가 평가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중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떠나기 직전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시 주석과의 만남은 무역과 북한 문제에서 아주 생산적이었다”면서 “그는 중국 국민으로부터 매우 존경받는 파워풀한 대표자이고, 그와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할 수 있어 아주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