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미래학 향연] 미국은 왜 보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더 많을까 <35> 진보의 뇌, 보수의 뇌 입력 2018-03-30 17:53:56, 수정 2018-04-25 11:24:23 ◆진보는 좌측, 보수는 우측에 정국을 주도하는 공화파는 루이 16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다시 ‘국민공회’를 선언했다. 프랑스는 국민이 투표로 뽑힌 대표자들이 다스리는 공화국이 됐다. 국민공회에서는 다시 의견이 갈렸다. 왕을 처형해야 한다는 자코뱅파와 왕을 죽일 필요는 없다는 지롱드파가 대립했다. 서민을 대신해 급진적인 변화를 주장하는 자코뱅파가 왼쪽에 앉았고, 부자 계층을 대표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꾀하는 지롱드파는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데올로기(Ideologie)는 인간이나 자연, 사회에 대해 가지는 이념적인 의식의 형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사물을 본인의 사회적·심리적·생리적 기반과 연관 지어 이해하고 관념을 형성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데올로기로서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는 프랑스 혁명과정을 통해 정립됐다고 볼 수 있다. 진보주의란 현재의 사회체제 문화 제도의 모순을 혁신적 개혁을 통해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이나 태도를 말한다. 혁명기간 동안 시민계급이 주로 진보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에 반해 보수주의는 현재의 가치나 체제를 보호해 안정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귀족계급은 그들의 사회적인 기반이 흔들리자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보수주의적 심리태도는 각자 개인적 또는 계급적 이익과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조금 더 명확히 말하면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진보는 변화, 보수는 안정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상대적으로 가변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초기에는 공화파가 진보를, 왕당파가 보수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혁명 후기에 더 급진적인 자코뱅파가 나타나자, 온전한 공화주의자인 지롱드파는 보수주의가 됐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제기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진보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이후 자본주의의 모순에 반발해 사회주의가 형성됐다. 이렇게 되자 기존 질서인 자유와 민주주의는 보수로 간주되고, 새로이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는 진보로 불리게 됐다. 오늘날의 보수주의는 자유 경쟁과 시장경제는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주의는 평등한 사회를 위해 개인의 경제 활동과 경쟁에 어느 정도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프랑스혁명 이후로 현재까지 진보주의는 좌파라 불리고, 보수주의는 우파로 불리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사고방식의 차이 진보주의자는 사회를 바꿔 개선하려 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사고방식을 보이기 쉽다. 진보주의는 미래에 지향점을 두고 현재를 바꾸고자 하기에 ‘글로벌 최적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개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현상유지를 주장하기에 ‘로컬 최적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과정에서 보았듯이, 급진적인 주장은 회의장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반해 안정을 주장하는 사람의 논리는 강력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논리라면 더욱 궁해 보인다. 그래서 총론에서는 찬성하지만 각론에서는 반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총론에서는 변화에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하다가, 실제 실행 단계가 되면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시기상조나 부작용이란 이유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는 ‘목적 중심’이라 말할 수 있고, 보수는 ‘과정 중심’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진보는 ‘미래 지향적’인 면이 있고, 보수는 ‘현실 지향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진보는 ‘이상’에 가깝고 보수는 ‘현실’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국에서도 진보는 기존질서를 바꾸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진보는 과거 또는 현실 지향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적폐청산과 분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학회의 토의 내용을 들어보면 이해가 된다. 한국의 진보도 적폐청산과 분배를 통해 미래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변화와 이상향 건설이라는 서구식 진보와 맥을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심리적 차이 이데올로기적 심리의 차이를 보면 더욱 흥미롭다. 현상유지를 주장하는 보수의 근저에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은 공포로부터의 해방이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에서도 기아로부터 해방과 안전에 대한 욕구가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러한 욕구는 생존을 위한 감성적인 본능이다. 희망적인 미래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자는 주장은 다분히 이성적인 주장이다. 감성은 뇌 속의 깊은 곳에 위치하는 변연계가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반해 이성적인 사고는 전두엽을 포함한 피질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특성이라 말한다. 그동안의 철학과 윤리는 감성을 억누르고, 이성이 인간의 주인이 되도록 가르쳐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성도 결국 생존본능을 위한 전략적 사고 작용으로 보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 ◆진보의 전두엽과 보수의 변연계 변화를 주장하는 서사는 아름답고 우아하다. 이것은 이성적인 활동이라 말할 수 있다. 즉 뇌의 전두엽의 작용이다. 그러나 변화는 두렵다. 본능적인 자기 보존의 반응이다. 감성을 관장하는 변연계의 표상이다. 변화를 추구하며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진보는 전두엽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변화의 두려움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보수는 변연계의 작용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좌파-진보-변화-이성-전두엽’과 ‘우파-보수-안정-감성-변연계’의 두 관계식이 성립되는 것 같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 이후로 결국 인간도 동물이라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모든 동물의 유전자는 생존을 위한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우리 인간도 평상시에는 이성이 우세한 듯하지만, 생존의 문제가 걸리면 감성이 지배한다. 고려대 행정대학원 조아인씨는 한 간담회에서 사회에는 안정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보수적인 경향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 경향은 미국 대통령의 소속 정당을 분석해보면 잘 보인다. 공화당(휘그당)과 민주당의 양당제가 정착된 1829년 이후 190년 동안 현재의 트럼프까지 39명의 대통령이 있었다. 이 중 23명(59%)이 공화당 대통령이고, 16명(41%)이 민주당 출신이다. 앞으로도 진보와 보수의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진보를 지지하는 전두엽은 뇌의 표면에 존재하고, 보수를 지원하는 변연계는 내부에 존재한다. 인간 행동의 표면에서는 진보가 우위를 보이는 듯하지만, 내면에 들어가 보면 보수 경향을 가지는 현상은 계속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의 원리를 보면 보수가 우세하지만, 변화 없는 보수가 지속되면 멸망한다는 역사의 원리 또한 이채롭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