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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혐오론 공감 못 얻어”… 선 긋기 나선 페미니즘 진영

‘워마드’, 도 넘은 행태로 고립 자초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재기(자살을 뜻하는 은어)하라’ 표현,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나체 사진 재유포, 천주교 성체(聖體) 훼손, 남성 목에 칼을 들이댄 사진과 해외 사이트에서 퍼온 태아 낙태 사진 게시, 심심찮게 올라오는 남성 사체 사진과 몰래카메라 캡쳐 사진까지….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의 기행이 멈출 줄 모른다. 혐오 대상이 된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워마드를 ‘필요악’이나 ‘페미니즘의 한 갈래’ 정도로 여겨오던 페미니즘 진영마저 워마드와 선 긋기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잇따른 기행으로 사회적 논란을 빚고 있는 남성 혐오 커뮤니티 워마드의 대문 사진.
워마드 캡쳐
◆유명 페미니스트·단체 앞다퉈 비판

시발점은 지난 10일 불거진 성체 훼손 논란이다. 페미니즘 단체 한국여성대표연합은 이튿날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페미니즘은 여성의 사회·정치·법률상의 권리 확장을 주장하는 주의, 남녀 동권주의를 뜻한다”라며 “워마드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 얼굴을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 나체사진’과 합성해 올린 게시글.
워마드 캡쳐
이 단체는 “남성혐오는 페미니즘이 아니고, 성평등권은 남성을 짓밟는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며 워마드 회원들이 참여한 ‘혜화역 시위’에 대해서도 평가를 내놨다. 이 단체는 “혜화 집회는 남녀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한 분노와 증오, 혐오의 현장이었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일에는 유명 페미니스트인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성체 훼손 사건을 보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의미 없이 내뱉는 욕은 의도조차 망친다는 정도”라며 “솔직히 (천주교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밝혔다.

페미니스트이자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가 한 방송에 출연해 대화를 하고 있다.
EBS 캡쳐
은씨는 “그저 뭐라도 욕하고 싶은 본인의 마음과 파괴 본능을 포장하고 싶은 건 아닌가”라며 “어그로를 끌고 관심 받는 것 자체가 동력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 미안하지만 의미도 의도도 없이 그저 텅 빈 상태에서 받는 관심은 그 무엇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일갈했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자신을 자타가 공인하는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한 직장인 김모(28·여)씨는 “요즘 논란이 된 사건들이 있기 전까지 워마드를 ‘급진적 페미니즘’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지난 10일 워마드에 붉은 글씨로 낙서된 채 불에 탄 천주교 성체 사진이 올라왔다.
워마드 캡쳐
◆“언제는 페미니즘이라더니” 일침도

워마드를 향한 비판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일 현재 청와대 누리집의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워마드 폐쇄를 요구하는 취지의 청원만 수백건이 올라와 있다. 경찰도 문 대통령 합성 사진과 남자아이 살해 예고글, 목욕탕 몰카 사진 등과 관련해 내사에 착수한 상태다.

지난 19일 워마드에 올라온 경기 수원시의 남성 목욕탕 몰래카메라 사진과 게시글.
워마드 캡쳐
이런 가운데 페미니즘 진영의 우려대로 워마드와 페미니즘을 동일시하는 시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학생 최모(20)씨는 “워마드 하는 사람들이 곧 페미니스트 아니냐”며 “얼마 전까지는 페미니스트들이 워마드를 감싸려 했는데 태도가 돌변해 의문”이라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김모(27)씨는 “한 때 워마드를 ‘3세대 페미니즘’이라고 치켜세우던 게 기억난다”면서 “혜화역 시위 현장에서는 참가자들이 ‘우리가 메갈(메갈리아·워마드의 전신)이다’라고 외치기도 했는데, 이것만 봐도 워마드를 페미니스트로 인정해준 것 아니냐”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워마드가 불러 일으킨 사회적 논란과 각종 범법 행위 등은 문제이지만, 페미니즘 진영 전체를 싸잡아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학자이자 한양대 연구교수인 전우용씨는 “워마드 같은 패륜집단을 한국 페미니즘의 선봉대로 간주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 문제”라며 “한국 사회가 성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라 해도 패륜집단을 선봉으로 삼아서는 결코 (페미니즘 진영이) 이길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 남녀 간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며 “워마드의 남성 혐오는 분명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거기에 휩쓸려서 성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묵살해 버리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라고 조언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