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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횡단보도 초등생 사망 사고’ 왜 가중처벌 안되나

굴착기, 도로교통법상 건설기계 11종에 포함 안 돼
조종사 면허로 운행, 운송용 아니라 자동차로 볼 수 없어

최근 바퀴식 굴착기 늘면서 일반 차량처럼 운행 늘어
전문가, 법이 현실 제대로 반영 못 한 결과라 지적

지난 7일 오후 4시쯤 굴착기가 초등학생 2명을 치는 사고가 난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 송탄소방서 제공

경기 평택시의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어린이를 치어 숨지게 한 굴착기 기사가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사망한 초등학생은 어린이보호구역 안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이른바 ‘민식이법’(어린이 보호구역 내 어린이 치사상의 가중처벌) 혐의가 운전자에게 적용되지 않아 논란을 키운 상태다. 굴착기가 도로교통법이 정한 자동차나 건설기계의 범주에 속하지 않아 법 적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회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뒤늦게 법률 개정에 나섰다.

 

◆ 학교 앞 굴착기 사망사고에 ‘민식이법’ 적용 못 해…굴착기는 조종사 면허로 운행

 

14일 경기 평택경찰서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상) 및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50대 굴착기 기사 A씨를 검찰에 넘겼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7일 오후 4시쯤 평택시 청북읍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굴착기를 운행하던 중 횡단보도를 건너던 B(11) 양 등 2명을 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고로 B양은 숨지고 C양이 다쳤으나, A씨는 별다른 조치 없이 3㎞가량을 계속 운전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경찰에서 “사고를 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직진 신호가 적신호로 바뀌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주행하다가 정상적으로 길을 건너던 아이들을 들이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도로교통공단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사고 당시 A씨 굴착기의 속력은 시속 28㎞로, 어린이보호구역 내 제한 속도인 시속 30㎞는 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을 두고 어린이보호구역 안에서 어린이 관련 사망 사고가 났지만, 사고 운전자에게 가중처벌을 규정한 ‘민식이법’을 적용할 수 없어 논란이 커진 상태다. 경찰은 굴착기가 도로교통법이 정한 덤프트럭 등 건설기계 11종에 포함되지 않아 법 적용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상 건설기계는 대형면허 등 자동차 운전면허가 있어야 운행할 수 있지만, 굴착기의 경우 조종사 면허로 운행할 수 있다. 굴착기는 공사를 위해 사용하는 기계로 운송 등이 목적이 아니어서 자동차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7일 경기도 평택시 청북읍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초등학생들이 굴삭기에 치여 1명이 다치고 1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8일 오후 사고 현장에 시민과 학생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평택=뉴시스

◆ ‘사각지대’에 놓인 건설기계에 특가법 적용 움직임…법률 개정안 발의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산업 현장과 도로 환경 등 변화한 현실을 법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최근 바퀴식 굴착기가 늘면서 일반 차량처럼 운행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바퀴가 달린 굴착기는 최고 속력이 시속 60㎞에 달한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제외한 국도 등에서 일반 차량처럼 운행할 수 있다.

 

이번에 사망사고를 낸 굴착기도 10t이 넘는 바퀴형 굴착기였다. 

 

경찰은 이 사건의 운전자에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상) 및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만 적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식이법 적용이 불가능해 같은 법률 안의 뺑소니 혐의에 대한 가중처벌도 이뤄지지 못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회에선 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민식이법을 대표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모든 종류의 건설기계 운전자에게 특가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일부 개정안을 최근 발의했다.

 

민식이법은 2019년 충남 아산의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고(故) 김민식(9)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사회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