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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시설 과부하 여전… 수방·치수비용까지 줄어 ‘속수무책’ [수도권 115년 만에 물폭탄]

서울 막대한 피해 원인은

강한 정체전선 동서로 길게 발달
기후변화로 특정지역에 쏟아져
동작 381㎜ 올 때 노원은 100㎜

시, 수방·치수예산 작년比 896억↓
10년 전 침수로 배수공사 했지만
단기간에 쏟아진 비 감당 못해
안전 담당은 공석… 부실한 대응

8일 서울을 마비시킨 폭우는 종잡을 수 없는 이상기후와 관계 당국의 안일한 대응이 빚은 결과다.

이날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는 하루에 381.5㎜의 비가 쏟아져 우리나라 기상 관측 시작 이래 115년 만에 최악의 폭우로 기록됐다. 특히 한강 남쪽에 있는 지역에 강수가 집중됐다. 전날 누적강수량을 보면 강남구 326.5㎜, 서초구 354.5㎜, 송파구 307.0㎜로 집계됐다. 그러나 한강만 건넌 성동구는 164.5㎜, 강동구는 170.5㎜만 내렸다. 노원구와 성북구 누적강수량은 100.0㎜에 그쳤다. 기상청과 직선거리로 약 20㎞ 남짓 떨어졌을 뿐이지만 강수량은 3.5배 넘게 차이 났다. 정체전선이 띠처럼 얇게 발달한 탓이다.

중부 지방 폭우로 한강 수위가 급격히 상승한 9일 서울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여의도 한강공원 일대와 통제된 올림픽대로, 여의상류IC 교차로 일대에 물이 차올라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북태평양고기압과 북쪽에서 내려온 차고 건조한 공기가 정면충돌해 발달한 이번 정체전선은 매우 얇고 긴 비구름을 발달시켰다. 우리나라 북동쪽 공기 흐름이 정체되며 이곳으로 빠져나가야 할 찬 공기가 우리나라로 꺾여 들여오며 기존에 볼 수 없던 매우 강한 정체전선이 만들어졌다. 원래 저위도에 있어야 할 수증기를 가득 머금은 공기가 서태평양 중위도까지 올라온 것도 ‘물폭탄’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전날 서울 남쪽에 특히 폭우가 집중된 원인은 아직 기상청에서도 분석 중이다. 우진규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서울 내 차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아직 세부 증거를 찾기는 어렵다”며 “남쪽 수증기와 북쪽 건조공기의 힘이 교차되며 남북으로 폭이 굉장히 좁은 선형 구름이 만들어졌는데, 힘의 균형은 어느 지역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비는 넓은 곳에 고르게 내리기보다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만큼 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지만 서울시의 수방 및 치수 예산은 2년 연속 줄었다.

서울시의 올해 수방 및 치수예산은 4202억원으로 지난해 5099억원보다 약 896억원(17.6%)이 줄었다. 2019년(6168억원)과 비교하면 2000억원 가까이 줄었다. 최근 몇 년간 집중호우가 없어 미흡한 대응이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록적인 물폭탄이 쏟아진 8일 밤 서울 서초구 강남역 부근 테헤란로가 물에 잠기면서 오도 가도 못한 차량들이 사거리에서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강남역 부근은 주변보다 10m 이상 낮아 서초와 역삼 등 고지대에서 물이 흘러와 고이는 ‘항아리 지형’인 데다 반포천 상류부 통수 능력이 부족한 탓에 집중호우로 상습 침수되는 지역이다. 트위터

시 관계자는 “편의시설, 산책로, 자전거도로, 체육시설 등을 유지 관리하는 치수비용이 줄었고 수방비용은 예년 수준으로 줄지 않았다”며 “노후 하수관 정비 등 시급한 사안은 재난관리기금(재난계정)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강남역 일대 침수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이후 시는 10년간 총 3조6792억원을 투입해 하수관로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설계문제 등으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를 바로잡는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를 아직 완료하지 못하고 있다. 배수구역 경계조정은 하천수위보다 높은 고지대와 하천수위보다 낮은 저지대의 경계를 조정해 빗물의 배출방식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서초구 서울남부터미널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분산하는 지하 배수시설을 만드는 유역분리터널 공사는 600억원을 들여 올해 6월 완료됐다. 이번 공사로 시간당 약 85㎜까지 대응이 가능해졌지만 전날 강남 일대에 내린 비는 시간당 110㎜ 수준으로 이를 뛰어넘어 사실상 침수예방 기능을 하지 못했다.

9일 서울 서초구 진흥아파트 앞 서초대로 일대에서 전날 내린 폭우에 침수됐던 차량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영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이번처럼 단기간 폭우는 서울시의 강남역 배수시설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강남역 일대는 지하철 때문에 저류시설 설치가 어려운 부분이 많아 고지대인 역삼, 신사 등 주변에서 빗물 유입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다시 찾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시의 최근 인사로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자리가 공석이 돼 이번 폭우에 제대로 컨트롤타워가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제현 전 안전총괄실장은 지난 1일 행정2부시장으로 임명됐고 백일헌 전 안전총괄관은 지난 5일 광진구 부구청장으로 전출돼 현재 안전총괄실 실·국장 자리가 비어있다.

시는 “풍수해 예방 및 대응은 행정2부시장 산하 물순환안전국장 중심으로 서울시 및 자치구 직원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