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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빠진 도로 위 뒤엉킨 침수차… 흙탕물에 쓰레기 아수라장 [수도권 115년 만에 물폭탄]

초토화된 수도권

물바다 된 서울 강남 대치역 사거리
침수 차량 수십대 갓길 옮기기 바빠

대중교통 정상화 안 돼 출근길 2배
주민들 “비 더 온다는데 걱정” 한숨

차량 침수피해 하루 새 3000건 접수
축대 붕괴·하천 범람에 주민 대피도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9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대치역 사거리는 전날 집중호우의 여파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지난밤 폭우로 침수됐던 차들은 물이 빠진 후 덩그러니 방치된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차와 도로에 물이 들어차 도저히 운전할 수 없었던 차주들이 차를 세워두고 급히 떠났기 때문이다. 수십 대의 침수차량은 도로 갓길로 옮겨진 상태였고, 일부 차량은 중앙선 부근에 서 있어 차량 통행을 방해했다.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부근 도로에 지난밤 내린 폭우로 침수된 차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멈춰 선 버스 앞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통제하던 버스업체 관계자는 “전날 버스가 물에 잠겨 시동도 꺼지고 움직이지도 못했다”며 “견인차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근 주민들도 밤사이 폭우로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대치동에 20년 가까이 거주한 60대 박모씨는 “이 동네가 폭우 때 자주 침수되는 지역이긴 한데, 이번 폭우 피해가 가장 큰 것 같다. 2011년 물난리 때보다 심각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날 서울과 수도권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115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이날 각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피해 복구에 나섰지만 침수된 차량들이 차선을 막고, 일부 지하철과 버스 운행이 중단돼 ‘교통대란’이 빚어졌다.

서울은 강남·서초·동작·관악구 등 남쪽 지역을 중심으로 비가 집중적으로 내려 피해가 컸다. 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부터 이날 오전까지 서울 남부지역에 3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강남 등 일부 지역은 시간당 강수량 100㎜ 이상을 기록해 침수 피해가 속출했다.

혼란의 서초대로 9일 서울 서초대로에 침수 차량이 즐비한 가운데 운전자들이 우산을 쓰고 차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남정탁 기자

이날 오전 강남역 일대도 여전히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전날 밤 도로가 잠기고 하수가 역류하면서 물바다가 됐던 상흔이 그대로 남았다. 주변엔 흙탕물이 고여 있었고, 쓰레기도 널브러져 있었다. 일부 인도엔 보도블록이 폭우로 파손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고, 한 도로에는 침수차량들이 차선을 가로막았다.

시민들의 발이 묶이면서 교통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침수차량이 방치된 채 출근길 차들이 뒤엉키면서 혼란을 빚었으며, 지하철·버스 운행도 정상화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여의도에 근무하는 직장인 박모씨는 “원래 9호선 급행열차를 타면 30분 만에 직장에 도착하는데, 일반열차만 운영하고 일부 구간이 제한돼 버스로 갈아타느라 1시간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전날 불어나는 물을 미처 피하지 못한 실종자도 발생했다. 한 건물 지하주차장에서 급류에 휩쓸리는 등 서초구에서만 4명이 실종돼 소방당국이 수색에 나섰다. 경기 광주에서는 하천 범람으로 2명이 실종됐다.

9일 서울 동작구 극동아파트의 축대가 지난밤 내린 집중호우로 무너져 있다. 동작구 제공

동작구의 극동아파트에선 전날 인근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축대가 무너졌다. 일부 주민들은 사당2동주민센터, 동작중학교 등으로 대피한 상태다. 인근 도림천이 범람하면서 동작구 신대방 1·2동 주민들도 임시주거시설로 대피했다. 관악구 서울대에서는 토사물이 내려오고 건물이 정전됐다.

지하상가를 중심으로 자영업자들의 피해도 속출했다. 강남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70대 김모씨는 “가게가 물에 잠겨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물을 빼냈다. 이번 주는 문을 닫고 피해 복구에만 매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과 서초구 일대에선 건물에 전기가 끊겨 직장인들이 회사로 출근하지 못하기도 했고, 음식점 등도 영업에 차질을 빚었다.

쑥대밭 된 시장 9일 서울 이수역 인근 남성사계시장에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수해를 입은 상인들이 집기 등을 정리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이번 폭우로 접수된 차량 침수 피해는 하루 만에 3000건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기준 삼성화재·현대해상 등 전체 12개 손보사에 전날부터 접수된 차량 피해 신고는 2719건, 추정 손해액은 383억8800만원이다.

금융권은 집중호우 피해를 본 개인 및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금융 지원에 나선다. 신한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우리금융그룹 등은 개인을 대상으로 긴급생활안정자금대출과 카드 결제자금 청구 유예·분할상환, 카드대출 수수료 할인, 피해일 이후 연체이자 면제, 보험료 납부유예·분할납부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에는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을 비롯해 대출금리 감면(특별 우대금리 제공), 분할상환금 유예 등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