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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미사일 이어 새로운 도발… 전투·폭격기 투입 ‘틈새 압박’

오전에 SRBM 2발 발사 뒤
北 전투기 8대·폭격기 4대
특별감시선 이남 편대비행
공대지 사격훈련 실시 추정
軍, F-15K 등 30여대 출격

한·미 재래식 전력에 정면 대응 어려워
北, 비용대비 효과높은 미사일로 맞서
이번엔 수도권 가까운 황해도서 도발
한반도 긴장 수위 높여 한·미·일 압박

북한이 6일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폭격기와 전투기를 동원, 휴전선 이북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 전투기 8대와 폭격기 4대 등 군용기 12대가 이날 오후 2시쯤부터 약 1시간에 걸쳐 황해도 곡산 일대에서 황주 방향으로 비행하면서 우리 군의 특별감시선 남쪽으로 시위성 편대 비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0년 4월 12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한 북한 전투기의 이륙 모습. 연합뉴스

군은 북한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이 일대에서 공대지 사격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추정했다. 북한이 무력시위 성격의 편대비행을 한 것은 지난 1년간 볼 수 없었던 움직임이다. 북한 군용기가 침범한 특별감시선은 군이 북한 공군의 남하에 사전 대응하기 위해 추적·감시를 하는 지역이다. 군용기는 속도가 빨라서 사전대응이 중요하기 때문에 감시선을 넓게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의 공중 무력시위에 맞서 우리 군은 F-15K 전투기 등 30여대를 출동시켜 대응에 나섰다. 북한의 편대비행과 우리 측의 대응 상황은 1시간 넘게 지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무력시위성 편대비행은 한·미·일이 동해상에서 실시한 북한 핵·미사일 대응 훈련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7600t급), 미 해군 로널드 레이건호 항모강습단,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조카이함(7500t급)이 참가한 이번 훈련에서는 미사일 탐지·추적·요격 절차를 익히는 훈련이 이뤄졌다. 레이건호 항모강습단은 지난달 부산에 입항해 한·미 연합해상훈련, 한·미·일 대잠수함전 훈련을 마친 뒤 이동했으나, 지난 4일 IRBM 발사 직후 동해로 재진입했다.

북한은 편대비행에 앞서 탄도미사일을 쐈다. 합참은 이날 오전 6시1∼23분 북한 평양시 삼석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평양 삼석 일대에서 미사일을 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미사일은 비행거리 350여㎞, 고도 80여㎞, 속도는 마하 5였으며 두 번째 미사일은 비행거리 800여㎞, 고도 60여㎞, 속도는 마하 6으로 탐지됐다. 비행궤적상 첫 미사일은 KN-25 초대형 방사포, 두 번째 미사일은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로 추정된다.

6일 오전 시민들이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북한이 쏜 미사일 중 두 번째 미사일은 변칙궤도로 비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서로 다른 기종을 함께 발사하는 ‘섞어쏘기’를 했다는 분석이다. 이날 발사는 최근 12일 동안 6번째, 윤석열정부 출범 후 10번째 미사일 발사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이 기존에는 무기 실험 제원을 밝히며 개발과정을 공개적으로 과시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양산·배치·실전화된 무기를 중심으로 대응 차원의 운용성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봤다.

 

정부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한 뒤 “국제사회에 대한 묵과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규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북한이 도발의 길을 계속 간다면 그들의 행동에 대한 비난과 고립, 대응 강화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北 이례적 휴전선 이북 공중시위 왜

 

북한이 6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쏜 직후 폭격기와 전투기를 투입해 무력시위에 나섰다.

 

북한의 이 같은 도발은 미사일 위주의 도발에서 벗어나 다양한 군사적 움직임을 과시, 우리 측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틈새 압박’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 북한은 사거리가 서로 다른 미사일을 계속 쏘아올리는 방식으로 한·미·일의 대북 압박에 맞서왔다. 경제난으로 한·미 연합군의 재래식 전력에 정면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워진 북한은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미사일 카드를 앞세워 무력시위를 해왔다. 신기술이 다수 적용된 KN-23 단거리탄도미사일 등이 처음 등장했던 2019년에는 정치·군사적 시위 효과가 높았다. 이에 맞서 한·미는 연합 지대지미사일 발사 훈련과 연합공중훈련 등을 통해 북한 도발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해 왔다. 북한의 전투기 편대 위협은 그간 미사일 발사가 잦아지면서 무력시위 효과가 약해졌다는 판단 아래 미사일 카드 외에 다른 방식의 도발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중국산 H-5로 추정되는 북한 폭격기의 무력시위 비행은 우리를 겨냥한 또 다른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비행이 이뤄진 황해도 곡산·황주 일대는 수도권과 가까운 곳이다. 북한이 수도권에 인접한 곳까지 폭격기를 투입하면, ‘서울 사수’가 핵심 목표인 한국군의 부담은 한층 가중된다. 복수의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폭격기와 전투기가 한데 모여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북한의 공군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효과도 있다. 한·미 연합훈련 강화에 맞서는 방어적 억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한·미의 움직임에 맞춰서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맞춤형 대응’을 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북한의 미사일·전투기 도발은 한반도 긴장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화성-12형이나 화성-14·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과시 효과가 크지만, 기술·정치적 요인으로 빈번하게 쏘기가 어렵다. 이는 한반도 긴장 국면 유지를 어렵게 한다.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일정을 사전에 정해놓고, 그 사이에 단거리탄도미사일을 쏘면서 폭격기·전투기를 동원한 공중 무력시위를 추가할 수 있다. 단거리탄도미사일과 군용기는 중·장거리미사일보다 운용이 더 쉽다. 한반도 긴장 수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카드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한반도 긴장 수위가 약화되지 않도록 하면서 제7차 핵실험 등 전략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보문을 내고 “미국과 일부 추종 국가들이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한·미 연합훈련들에 대한 우리 군대의 응당한 대응 행동 조치를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부당하게 끌고 간 데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로널드 레이건호의 동해 재진입에 대해선 “미국이 조선반도 수역에 항공모함 타격집단을 다시 끌어들여 엄중한 위협을 조성하고 있는 데 대해 주시하고 있다”며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