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눈, 글로벌 미디어 - 세계일보 -

英 역사상 첫 非백인 총리 나온다…42세 ‘수낵’, 차기 확실시

존슨 前총리 경선 불출마
인도계 ‘수낵’ 차기 확실시

영국 역사상 최초의 비(非)백인 총리 탄생이 확실시된다.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리시 수낵 전 재무부 장관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으로 차기 영국 총리로 굳어졌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리시 수낵 전 재무부 장관. AFP연합뉴스

존슨 전 총리는 불출마 성명에서 “출마가 옳은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정당이 통합하지 않으면 효과적인 정치도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수낵 전 장관은 앞서 23일 “영국의 경제를 바로잡고, 당을 통합하고, 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출마를 선언했다. 의원 내각제인 영국에서는 다수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보수당 대표선거 후보로는 당 소속 하원 의원 100명 이상의 지지가 필요하다. 23일 기준 수낵 전 장관은 155명, 경쟁자인 페니 모돈트 원내대표는 25명의 지지를 확보했다.

대표 후보등록 마감인 24일 오후 2시(한국시간 24일 오후 10시)까지 모돈트 원내대표가 100명이상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수낵 전 장관이 경선 없이 바로 당선된다. 모돈트 원내대표가 극적으로 후보등록에 성공하면 24일 순위 결정을 위한 소속 하원 의원 투표를 진행한 뒤 전체당원(약 15만명) 투표를 거쳐 28일 결과가 나온다.

리즈 트러스 총리가 촉발한 감세안 후폭풍을 수습 중인 제러미 헌트 재무부 장관은 존슨 전 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수낵 전 장관 지지를 공개 표명했다. 헌트 장관은 “수낵 전 장관은 우리의 다음 지도자로서 안정과 자신감을 줄 것”이라며 “국민이 걱정하고 있는 일자리, 주택담보대출, 공공 서비스 문제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헌트 장관은 지난달 당대표 겸 총리 경선 때도 수낵 전 장관을 지지했다.

지난달 보수당 당대표 겸 총리 경선 결선에서 최종 2위를 차지한 수낵은 트러스 총리가 역대 최단기 총리라는 꼬리표를 달고 물러나면서 역으로 최단기 재도전 성공이라는 영예를 눈앞에 두게 됐다.

리즈 트러스 총리. AFP연합뉴스

영국 매체들은 리즈 트러스 총리가 지난달 발표한 감세안을 수습하지 못하자 일찌감치 수낵 전 장관의 복귀를 전망했다.

 

앞서 더타임스는 “수낵이 차기 총리가 되면,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을 정치적 부활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수낵 전 장관이 총리가 되면 트러스 총리 시절 초래된 극심한 혼란상을 수습하면서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접어드는 영국 경제를 살려낼 중책을 맡게 된다. 리더십을 발휘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후 5번째 총리가 등장할 정도로 불안정한 국내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고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응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영국은 기술적으로 경기침체냐 아니냐 기로에 서 있는 상태이다. 향후 전망에 대해서도 어두운 수치들이 나오고 있다. 당장 10월 31일에 예산안 발표 여부부터 결정돼야 한다. 영국 정부는 이때 재정 전망까지 내놓을 예정이었다. 예산안엔 영국인들이 증세와 지출 삭감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각오해야 할지, 부채는 얼마나 늘어날지가 나오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G7(주요 7개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의 핵심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리더십 부각도 중요과제다.

 

야당의 조기 총선 실시 압박도 넘겨야 한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벌써 규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앤절라 레이너 노동당 부대표는 “보수당은 수낵이 어떻게 국정을 운영할지에 대해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은 채 국가 운영의 열쇠를 수낵에게 넘기려 하고 있다”고 했다.

 

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도 국정운영의 주요 변수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내년 10월 독립 재투표를 추진 중이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영국 정치에 큰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총리가 유력한 수낵 전 장관은 동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인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유색인종 이민 2세다. 비백인이지만 옥스퍼드를 졸업해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았다는 이유로 ‘백인보다 더 하얗다’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중심부에 있는 총리의 공식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 AFP연합뉴스

‘막대한 부’는 그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재산이 총 7억3000만파운드(약 1조2000억원)로 알려져 있는데 이 중 6억9000만파운드(1조1200억원)는 아내인 악샤타 무르티가 보유한 인도 정보기술(IT) 대기업 인포시스 지분이다. 무르티는 인포시스 창업자인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이다.

 

수낵 전 장관이 총리에 오르면 영국에서 42세의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쓰게 된다. 1812년 42세로 총리에 오른 로버트 젠킨슨 이후 210년 만의 최연소 총리다.

 

세계적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몸담았던 수낵은 2015년 총선에서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다. 2018년 1월 테리사 메이 내각에서 지방정부 차관에 올랐다. 당시 함께 일한 당 관계자는 수낵을 워커홀릭으로 묘사했다. 그는 “수낵은 어려운 정책 브리핑을 정말 빨리 이해하곤 했는데, 살면서 오전 2시까지 일하는 차관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라며 “어떤 사람들은 ‘금융인들이 일하는 방식’이라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2020년 2월 13일(현지시간) 리시 수낵 당시 재무부 수석 부장관이 재무장관으로 발탁되어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관저를 떠나는 모습. EPA연합뉴스

수낵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암흑시대에 오히려 인기를 높였다. 2020년 2월 재무장관에 오른 그는 코로나19 지원책으로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에 지원금을 투입하는 등 대규모 재정지원 정책을 폈고, 비교적 이 정책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 매체들은 수낵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매력적인 외모를 꼽는다. ‘매력적인 리시(Dishy Rishi)’가 별칭일 정도로 항상 잘 차려입은 모습이 영국 정계에서 그를 돋보이게 하는 데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극도로 깔끔함을 유지하는 모습이 존슨 전 총리를 포함한 보수당 전체 의원 중 가장 스타일리시하게 보이게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