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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아동수당·보육시설 무료화… 日 저출산 탈출 안간힘 [세계는 지금]

늙어가는 일본, 출산장려정책 쏟아져

2021년 합계 출산율 1.3명 그치고
장래 “아이 갖겠다”는 10대 46%뿐
학비 등 경제적 부담 가장 큰 원인

기시다 정부 6월까지 종합대책 마련
소득세 경감 등 전폭적 재정지원 논의
관련예산 GDP의 4%까지 확대설까지
일각선 ‘증세로 이어질라’ 신중론도

“아이는 절대 갖지 않을 거예요.”

일본 여성 A(25)씨의 이런 결심은 돈 때문이다. 교사가 되려고 고향을 떠나 도쿄의 한 대학에 다니면서 A씨는 생활비, 학비 등으로 400만엔(약 3800만원)을 빌렸다. 졸업 후 교사가 되어 매달 1만7000엔(16만4000원) 정도를 갚았으나 건강이 안 좋아 직장을 그만두면서 경제적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어렵게 다시 직장을 구해 대출금을 상환하고 있지만 다 갚으려면 18년이 걸린다. A씨는 “아이 학비를 생각하면 낳아 기르는 건 상상도 못 하겠다”고 한숨 지었다

지난 22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거리를 엄마와 아이가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지난해 신생아 수가 80만명도 안 되는 걸로 파악되면서 일본은 육아 가정을 지원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NHK 방송이 소개한 A씨의 사례는 출산, 육아에 대한 일본 젊은이들의 고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각종 비용, 학비, 직장생활 병행의 어려움 등 경제적 불안은 아이 낳기를 두렵게 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차원의 대책’ 마련을 공언한 이후 일본은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일본보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선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 생각할 수 없어 더욱 주목된다.

◆‘아이 갖겠다’ 절반도 안 돼…늙어가는 일본

2017년 후생노동성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인구문제연구소)는 2030년에 일본의 1년 신생아 수가 80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 예측은 8년이나 앞선 지난해 현실화되며 일본 사회에 꽤 큰 충격을 주고 있고, 인구감소에 새삼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22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공원에 아동용 좌석을 설치한 자전거들이 줄지어 서 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2015년 기준 1억2709만명으로 파악된 일본 인구는 2040년 1억1092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53년엔 9924만명을 기록해 1억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게 인구문제연구소의 전망이다. 일본 인구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자녀 수)은 2.7명이지만 2021년 1.3명에 불과했다. 일본재단이 지난해 12월 17∼1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장래에 아이를 가질 생각”이라고 답한 비율은 46%로 절반도 되지 않아 출산율이 오를 것이란 기대를 하기도 어렵다.

저출산으로 인한 일본의 노화는 심각하다. 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15년 26.6%인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2025년 30%, 2065년 3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기간 0∼14세 인구는 각각 12.5%, 11.6%, 10.4%로, 15∼64세 인구는 60.8%, 58.4%, 51.5%로 떨어진다.

이런 변화는 젊은 세대가 고령자를 지지하도록 설계된 사회보장제도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경제적 치명타가 되어 국력의 쇠퇴로 이어지게 된다.

◆경제 지원 중심 새로운 차원의 대책 논의

2023년 연초, 일본 사회의 화두는 단연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달 4일 신년회견에서 경제지원 확대, 육아지원 확충, 근무방식 개혁을 중심으로 한 “이차원(異次元·새로운 차원)의 대책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 시작이었다. 6월까지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겠다는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 지방자치단체 등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논의는 경제적 지원 확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젊은 세대들이 출산, 육아의 장벽으로 ‘금전적 부담’(69%, 지난해 12월 일본재단 조사)을 가장 많이 꼽고 있는 만큼 당연한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아동수당 지급에서 소득제한을 없애고, 대상 연령을 고등학생까지 포함하는 18세로 상향하는 걸 검토 중이다. 일본은 중학생까지 매달 1인당 최대 1만5000엔(14만5000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다만 부모 중 한 명의 연 수입이 1200만엔(1억1600만원) 이상이면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회에서는 소득세 경감 효과가 큰 N분 N승 방식 도입 논의가 활발하다. 선진국 중 출산율이 높은 프랑스에서 1946년 도입한 제도다. 가족의 소득을 합산해 구성원 수로 나누어 1인당 소득을 산출한 뒤 여기에 세율을 곱해 세액을 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맞벌이 가구보다 홑벌이 가구에 유리하고, 고액 소득자에게 큰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신중한 입장이지만 여야 모두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지자체도 대책 마련에 적극적이다. 특히 최대 지자체이자 합계출산율이 1.08명으로 지자체 중 가장 낮은 도쿄도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도쿄도는 올해부터 18세까지 매달 5000엔(4만8000원)을 지급하고, 둘째 자녀부터는 2살까지 보육료로 무상화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도립대학 수업료 무상화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또 난자 동결과 체외수정을 지원하는 비용을 조성하기로 했다. 저출산 대책, 아동 관련 예산이 1조6500억엔(15조9000억원)으로 크게 늘면서 도쿄도 올해 예산은 역대 최대인 8조400억엔(78조원)으로 편성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는 “저출산 대책에는 이미 일각(一刻·아주 짧은 시간)의 여유도 없어 선제적인 형태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22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공원에서 엄마가 두 아이와 함께 산책을 즐기고 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문제는 재원…얼버무리는 日 정부

문제는 재원이다. 현재 논의 중인 저출산 대책은 예외 없이 큰돈이 들어간다. 최근 기시다 총리의 국회 답변을 둘러싼 논란은 일본 정부도 이 부분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5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기시다 총리는 “2020년 가족관계사회지출은 국민총생산(GDP) 대비 2%를 실현했다”며 “그것을 배로 늘려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예산 증액 기준을 처음 밝힌 것이었다. 이 발언대로라면 GDP 4%로 올리겠다는 것인데 규모가 너무 큰지라 정부 내에서도 당혹감이 확산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아동 관련 예산을 지금껏 확실히 확충해 온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예로서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총리의 발언을 수정했다.

일본 정부가 재원 규모에 민감한 건 증세 논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저출산, 아동 예산의 내용이 정해지지 않은 단계에서 고통이 수반되는 재원 마련 방안이 초점이 되면 정부의 선택지가 좁아진다”고 분석했다.

22일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공원에서 한 엄마가 유모차를 밀며 아이와 함께 걷고 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저출산 대응 30년 만에 관련예산 7배로 껑충

 

일본 정부는 1990년을 기점으로 저출산 대책을 본격 추진했다.

 

1989년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1.57명을 기록하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합계출산율은 가임기인 15∼49세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다.

 

일본의 저출산 타개 노력은 관련 예산 증액에서 확인된다. 1990년도 1조5740억엔(약 15조2000억원)이던 육아 관련 예산이 2009년 3조9976억엔으로 2.5배가량 늘렸다. 예산은 2010년 이후 지난 10여년간 더욱 큰 폭으로 늘어나 2020년 10조엔을 넘어서며 1990년의 7배로 커졌다.

이렇게 늘린 예산으로 일본 정부는 시대 상황에 맞춘 다양한 출산율 제고 대책을 도입했다.

 

2009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당은 아동수당을 신설했다. 당시 민주당 정부는 아이가 있는 집에 매달 1만3000엔을 지원했다.

 

2012년 정권을 되찾은 자민당은 아동수당 지급액은 대체로 유지한 채 대기아동을 줄이기 위한 보육원 증설에 힘을 쏟았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 경제적 도움을 주는 단계를 넘어 육아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이듬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는 “2017년까지 대기아동 제로(0)를 목표로 하겠다”고 공언했고, 예산 확보에 나섰다. 이 정책 덕에 일본 보육원 등의 정원은 2013년 229만명에서 2021년 302만명으로 늘었고, 대기아동은 같은 기간 2만3000명에서 5000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2019년부터는 일부 유치원, 보육원이 무료화됐다. 보육원 증설과 보육료 일부 무상화 재원은 아베 정권에서 실행한 두 번의 소비세 증세로 마련했다. 아베 정권은 늘어난 소비세를 기존 고령자 대책 외 저출산 대책에도 사용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