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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왕 2700세대 건설 허용한 법제 공백 막아야” [전세사기 사태 일파만파]

전문가, 입법 부재 비판

“장애 없이 타인 명의로 임대사업
보증금 통해 갭투자 한 것” 지적

가짜 임대인을 앉히고 전세금과 주택담보대출을 동시에 받아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 주택 2700여채를 소유한 ‘건축왕’ 남모(61)씨의 사례가 경각심을 일으키면서, ‘바지 임대인’을 세우고 대출 등을 끌어 써도 제재를 하지 못하는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세사기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21일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주택 경매 매각기일 직권 변경 요청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미추홀구 ‘전세사기’와 같은 유사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명의도용을 막을 법·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를 상담 중인 천호성 변호사는 “‘빌라왕’, ‘건축왕’ 사건 등에서 다른 사람 명의로 임대사업을 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며 “장기간 보증금을 받아 건물을 계속 지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 같은 입법 부재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건물 소유자가 실소유자와 다르다면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며, 양도세 등을 내지 않고 있는데도 제재 없이 다른 부동산 소유권을 계속 취득하면서 피해자가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천 변호사는 또 “(남씨 일당 사례는) 집 짓는 과정에서 세입자 보증금을 가지고 갭투자를 한 것”이라며 “대출과 근저당 설정, 세입자 구하는 것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실제 담보가치에 비해 과하게 대출받았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부동산 평가의 경우 주택 가격이 올랐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가격이 내려가고 전반적인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시내 한 아파트에 경매 중지를 촉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지난 21일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남씨는 금융권 대출로 주택을 건립하고, 세입자들의 전세금으로 대출금을 갚다가 보유 주택이 2708채까지 늘어나며 가용 자금이 부족해지자 전세보증금을 더 올려 자금을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대출 이자 연체로 2022년 1월 11일부터 보유 부동산이 연쇄적으로 임의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였다.

 

사기, 부동산실명법·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남씨 측은 지난 5일 인천지법 형사1단독(부장판사 오기두) 심리로 열린 첫 재판에서 사기 혐의 등을 부인했다. 이에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야말로 폰지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 등을 지급하는 다단계 금융 사기)”라고 비판했다. 기존 대출을 갚지 않고 전세보증금으로 신규 주택을 지었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지자체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건설업자가 주택을 지었는데 분양이 안 됐으면 지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다”며 “HUG 역시 악성 임대인으로 분류하고 임대사업을 못 하도록 막았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임 교수는 시세를 부풀리는 데 가담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감독과 징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세입자가 전세를 구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이 공인중개사인데, 수수료를 감안해 물건이 위험해도 계약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김기윤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자격증 박탈 등 공인 중개에 대한 처벌 규정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