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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어요…” 아들 영정 앞에서 무너진 부모

故 채수근 해병 빈소 눈물바다

집중호우 피해 예천서 작전 투입
구명조끼도 지급 안 해 비판 일어
尹 “진심으로 애도… 재발 막아야”

예천 남은 실종자 3명 21일 재수색

집중호우 피해 지역인 경북 예천군에서 실종자 수색 중 급류에 휩쓸린 해병대원이 20일 숨진 채 발견됐다. 해병대가 안전 조치에 소홀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구조당국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 엿새째 실종자 수색작업을 이어갔다.

 

20일 기자가 찾은 실종자 수색현장에는 적막이 흘렀다. 수색대원들은 폭염특보가 내려진 땡볕 속에 땀 범벅이 된 채 현장을 뛰어다녔다. 이들의 얼굴에는 침통함이 가득했다. 전날 실종자 수색을 하던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채수근(20) 상병(추서 계급)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안타까운 일이 발생해서다.

20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김대식관에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의 빈소가 차려진 가운데 빈소 입구에 별도 설치된 그의 영정 사진을 보며 친인척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채 상병은 전날 오전 9시3분 예천군 호명면 석관천 인근에서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다 급류에 휩쓸렸다. 그는 “살려주세요”라고 외친 뒤 실종됐고, 같은 날 오후 11시8분 실종 지점에서 5.8㎞ 떨어진 내성천 고평대교 하류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후 해병대 마린온 헬기로 포항 군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해병대는 고인의 계급을 일병에서 상병으로 1계급 추서했다.

 

채 상병은 27년간 국가에 헌신한 현직 소방관의 외동아들로, 결혼생활 10년 만에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자식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자신보다 부모를 먼저 생각하는 효자이자 예의바른 청년으로 기억했다. 채 상병은 해병대를 너무나 가고 싶어해 모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설득해 입대했다고 한다. 채 상병의 어머니는 이날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김대식관에 마련된 채 상병의 빈소에서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엎드려 한참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지난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미호리 하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된 가운데 수색을 중단한 해병대원들이 낙동강 삼강교 아래서 동료의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소방관인 채 상병의 아버지는 전날 현장을 찾아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수색 지역이 수중이 아닌 하천변이어서 구명조끼를 착용시키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현장 주민들의 증언처럼 장병들이 장화를 신고 허벅지 높이까지의 물에 들어갔던 것이라면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용선 해병대 공보과장은 이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구명조끼를 착용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현장에서 어떤 판단을 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고 규정과 지침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실종자 구조를 위해 동원된 해병대와 경찰, 소방당국 등 기관별로 경쟁이 벌어지며 무리한 수색을 했다는 비판도 고개를 들었다. 수색대나 상륙기습대 같은 보병대가 아닌 포병대를 실종자 수색작업에 투입해 적절하지 않았다는 비난도 잇따르고 있다.

 

해병대는 이날 하루 애도기간을 갖기 위해 수색작업을 멈췄다. 부대 정비와 안전점검 후 21일부터 다시 예천지역 수해 복구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예천지역의 남은 실종자는 급류에 휩쓸린 2명과 토사에 매몰된 1명 등 총 3명이다. 경북도가 집계한 집중호우로 발생한 도내 사망자는 24명이다.

20일 경북 포항시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 관에 마련된 고 채수근 상병 빈소에서 해병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오전 6시 기준 공공시설과 사유시설 피해 2278건 중 응급 복구는 58%인 1332건을 완료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전국에서 호우로 인해 46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서울 넓이의 절반이 넘는 3만2894.5㏊의 농경지가 잠기고, 가축 79만7000마리가 폐사했다고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 상병 사망 사고에 대해 “순직을 진심으로 애도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유가족 분들과 전우를 잃은 해병대 장병 여러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이도운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브리핑에서 전했다. 윤 대통령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