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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벗은 내가 문제냐”… ‘비키니 라이딩’ 처벌 두고 갑론을박 [법잇슈]

비키니 입고 서울·대구·부산 돌아다녀
“불쾌감 줬으니 처벌” VS “이런 것까지…”
법조계 “적용 문턱 낮은 과다노출죄…
처벌 규정 없애는 것도 고려해야”

비키니 차림으로 오토바이에 탑승해 도심을 누빈 이들을 처벌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불쾌감을 줬으니 처벌하는 게 맞는다”는 찬성 의견과 “공권력이 이런 데까지 개입할 필요는 없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법조계에선 과다노출죄의 적용 문턱이 낮아 이 같은 논쟁이 발생한다고 본다. 아예 과다노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1일 지역 커뮤니티 게시글과 제보 등을 종합하면 지난 19일 성인 영상물 제작 업체 직원 여러 명이 대구와 부산에서 비키니 차림을 한 채 오토바이를 탔다. 이들은 오토바이에서 내린 뒤 ‘당당하게 벗은 내가 문제냐? 불편하게 보는 네가 문제냐?’ ‘대한민국의 성인문화는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진행했다고 한다.

 

부산경찰청은 지난 19일 오후 4시쯤 “비키니 차림을 한 이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닌다”는 112 신고를 접수하고 신원을 확인했다. 이들은 이달 초 서울 강남과 홍대, 잠실 등에서도 비키니를 입고 오토바이를 탄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 경찰은 이들에게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다. 과다노출죄는 공개된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성기나 엉덩이 등 신체 주요 부위를 노출해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면 성립한다. 위반 시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처분을 받는다.

 

‘비키니 라이딩’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 인플루언서 임그린씨가 비키니를 입고 강남역과 이태원역 주변에서 오토바이를 탔다 경범죄처벌법상 과다노출죄로 입건됐다. 경찰은 그해 11월 임씨를 검찰로 송치했다.

 

경찰이 이번에도 ‘비키니 라이더’들을 과다노출죄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할지 관심이 쏠린다. 우선, 많은 시민들은 이들을 형사처벌하는데 찬성하는 모습이다. 직장인 홍모(35)씨는 “길거리에서 비키니를 입고 돌아다니면 아이들이 볼 수도 있는데 충분히 불쾌감을 유발한다”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처벌해도 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에도 “아이들이 보기 때문에 안 좋은 것 같다”거나 “보기 싫다” 등의 댓글이 줄이었다.

다만 법조계에선 이 사안에 과다노출죄를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회의적인 시각이 크다. 비키니 정도의 복장은 표현의 자유 영역으로 볼 소지가 있어서다. 김한규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범죄 구성요건에 딱 맞아 떨어지는 사례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사람들이 비판을 할 수는 있겠지만 이걸 형사처벌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범죄 성립 구성요건이 상대적으로 간단한 과다노출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성범죄 분야 전문가인 김형민 변호사(법무법인 태일)는 “보통 다른 범죄 구성요건을 보면 단순히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 정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단순 부끄러움이나 불쾌감 정도라면 형사처벌까지 해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쉽게 얘기해서 과다노출죄 규정 자체의 허들이 너무 낮다”며 “처벌이 경미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이 정도는 처벌규정 자체가 없어야 맞지 않나 싶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논란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는 국가 공권력이 이런 것까지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유럽이나 미국에서 비키니를 입고 다닌 사람을 형사처벌한다고 하면 (해당 국가에서) 이 같은 행위를 후진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