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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물·식량 곧 바닥… ‘하마스 고사작전’에 가자주민 생존위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스라엘, 지상공격 전 저항 의지 분쇄 나서

봉쇄로 화력 발전소 가동 멈춰
“병원 비상 전력량 2~4일치 남아”
하마스 게릴라전 대비 시설 제거
연이은 공습에 민간인 희생 급증

이집트, 양측에 6시간 휴전 제안
이 급파 美 블링컨, 고위급 면담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대응으로 대대적인 지상군 투입을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이 전면 봉쇄와 연이은 공습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사실상의 고사(枯死)작전을 진행 중이다. 이번 무력충돌 이전에도 인구의 3분의 2 가까이가 빈곤에 시달렸던 가자지구에 전력, 식수, 식량 등을 완전히 끊음으로써 추후 진행될 전면적인 공격 때 있을지 모를 하마스를 포함한 저항세력의 반격 의지를 사전에 없애버리려는 시도다.

 

11일(현지시간)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군은 전날 밤에도 200곳 이상을 타격하는 등 공습을 지속했다. 주택뿐 아니라 병원, 학교 등 기반시설까지 포함된 무차별 공습이다.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어진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주택 2만2600채와 병원 10곳, 학교 48개가 파괴됐다고 팔레스타인 외무부는 밝혔다.

11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건물들이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돼 있다. AP뉴시스

봉쇄 영향 속 가자지구 유일한 화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면서 이 지역 전력망이 완전히 붕괴했다. 가자지구는 10개의 송전선을 통해 이스라엘로부터 부족한 전력을 공급받아 왔는데 이번 무력충돌로 이를 통한 공급이 끊겼다. 유일한 발전소 연료 역시 이스라엘에서 받았는데 9일부터 중단돼 가동이 멈춘 것이다.

 

전력 공급 중단으로 가자지구 230만명 주민의 생존 위기는 한층 더 가중됐다. 생존에 필수적인 식수와 병원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자지구는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한 담수에 식수를 의존해 왔는데,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담수화를 위한 공장을 가동할 수 없게 됐다.

병원도 폐쇄 위기 상황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가자지구 내 병원들은 현재 비상발전기로 가동되고 있으며 (발전기용) 연료가 며칠 내에 고갈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아랍 매체 알자지라 방송은 비상발전기를 사용하는 병원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2~4일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식량은 길어야 열흘 정도 버틸 수준으로 알려졌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25만명이 넘는 피란민을 위한 음식과 식수가 12일 분량밖에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네타냐후 만난 블링컨 “우리는 언제나 당신 곁에 있을 것”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 상황의 해법을 찾기 위해 급파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회담을 마친 뒤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텔아비브=AP연합뉴스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이스라엘군 진입이 현실화할 경우 하마스를 비롯한 가자지구 내 무장세력의 저항 동력은 급격히 상실될 수밖에 없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의 오랜 부분봉쇄 속 주민의 절반 이상이 식량 불안정을 겪는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해오며 봉쇄를 버틸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 고사작전이 지속되면 대규모 민간인 피해가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이 사태를 초래한 하마스에 대한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날 “하마스가 납치한 인질을 풀어주지 않는 한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완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면전을 앞두고 이어지는 강력한 봉쇄는 이러한 심리전적 요소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도 강도 높게 이어진 이스라엘군의 공습도 공포의 대상이다. 이스라엘 측은 이미 자국군 공격 대상에 하마스 등 무장정파뿐만 아니라 민간시설도 예외가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 연일 이어지는 대대적 공습은 진격에 대비해 이스라엘군과 예비군이 결집할 시간을 버는 동시에 전차 등 주요 공격 장비가 가자지구로 진입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시설물을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마스 등이 가자지구에 수십 개의 땅굴 등을 파놓고 게릴라식 응전을 할 가능성이 높아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에서 건물이나 부비트랩 회피 등으로 피해를 당하거나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인도주의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우회적으로라도 가자지구를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찾기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이집트가 가자지구에 인도적 지원을 위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6시간 휴전을 제안했다고 알아라비야 방송을 인용해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집트가 제한적 휴전 상태에서 가자지구와 이집트 간 유일한 통로인 라파 통행로를 통해 인도적 지원을 하는 계획을 미국 등과 함께 논의했다고도 전했다.

 

최악의 파국을 막기 위해 10일 이스라엘로 급파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12일 텔아비브에 도착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고위 인사들과 면담에 들어갔다. 블링컨 장관은 네타냐후 총리와 회견에서 “우리는 언제나 당신의 곁에 있을 것”이라며 이스라엘 지지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다만, 블링컨 장관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을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으며 팔레스타인인 역시 “타당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고 가자지구 주민들에 대한 보호 의지도 내비쳤다. CNN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로 떠나기 전 기자들에게 가자지구 주민들을 이집트 시나이쪽으로 대피시키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