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에 제초제에 결국 ''사망''
남은 가지로 白松 2세 키워 “백송할머니! 백송할머니! 누가 나무 죽이러 왔어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사는 홍기옥(74·여)씨는 동네에서 ‘백송할머니’로 통한다. 이곳에 있는 천연기념물 4호였던 630여년 된 백송에 대한 사랑이 유별나서 붙은 별명이다. 이제 나무 근처에 낯선 사람만 나타나도 동네 아이들이 몰려와 할머니를 찾는다.
홍씨가 처음 백송과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 통의동으로 이사 온 후 백송의 우람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명절 때마다 마을 사람들과 나무 밑에서 음식을 해 먹고 여름에는 그늘 밑에서 쉬고 가을에는 솔방울에서 씨를 까먹으며 깊은 정이 차곡차곡 쌓였다.
하지만 1990년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나무가 두 갈래로 갈라져 쓰러졌다. 나무 바로 옆에서 건축공사를 하다가 뿌리를 자른 것이 원인이었다. 홍씨는 당국의 감시 소홀로 천연기념물 근처에 공사 허가가 나 어이없게 국가의 보물을 잃어버리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때부터 홍씨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를 들락거리면서 일본 조경과 산림, 나무 관리하는 방법을 직접 배웠다. 홍씨의 노력과 함께 스위스의 한 제약회사 회장이 비료를 무상지원하겠다고 나섰고, 고 정주영 현대회장이 최상급 마사토를 공수해오는 등 정성이 모이면서 기적처럼 새순이 올라왔다. 하지만 1991년 어느날 한밤중에 누군가 나무와 흙에 제초제를 뿌려 백송은 최종 사망선고를 받았다.
결국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고 나무가 잘린 뒤 홍씨는 ‘백송 2세’를 심는 일에 마음을 쏟았다. 나무에서 자른 가지를 홍씨, 문화재청, 서울시청, 종로구청이 각각 하나씩 ‘어머니 백송’ 옆자리에 심었다. 이때 심은 2세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청년나무가 됐다. 홍씨는 또 나무를 잘라 수목원·청와대·헌법재판소 등으로 보내 전국 곳곳에서 백송 2세가 자라고 있는 중이다.
홍씨는 1994년 서울 강남구 포이동으로 이사했지만 백송이 자꾸 눈에 밟혀서 2년도 못 넘기고 다시 통의동으로 이사왔다. 그간 백송 관리에 6000만원을 넘게 썼다. 홍씨에겐 백송이 자식이나 다름없다.
현재 홍씨가 가장 힘쓰고 있는 일은 백송 2세가 국가 지정 문화재로 등록되도록 하는 것. 백송이 심어져 있는 땅 50평은 시가 5억원에 달한다. 소유권이 매매돼 공사를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홍씨는 “동네 사람들과 아들이 나 보고 나무에 미친 할머니라고 한다”며 “식목일이 되면 다들 열심히 나무를 심지만 정작 심어놓고는 관리를 안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백송이 제초제에 쓰러졌을 당시 맨손으로 땅을 파헤치다가 독극물 후유증에 걸리기도 했던 홍씨는 “백송에게서 받은 훈장이라고 생각한다”며 갈라진 손을 매만졌다.
백소용·장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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