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톈 지음/박경숙 옮김/은행나무/1만8000원 |
‘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중국인의 일상생활과 문화관습을 재치있고 무겁지 않게 풀어 쓴 인문교양서다. 저자는 중국 CCTV ‘백가강단’의 스타교수로, 인류학·역사학·인문학 등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연구를 토대로 진짜 ‘중국인’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중국인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반드시 긍정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경청하고 있다는 뜻이나, 심지어는 습관상의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수수께끼는 바로 문화의 수수께끼이기에 중국인을 알려면 우선 중국문화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책은 중국의 ‘음식’ ‘의복’ ‘체면’ ‘인정’ ‘단위(직장)’ ‘가정’ ‘결혼과 연애’ ‘우정’ ‘한담(잡담)’이라는 9가지 문화현상을 따라 중국인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꾸몄다.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풍습과 언어유래, 속담, 고사성어, 신화까지 등장시켜 학문적 깊이를 더해준다. 상다리가 부러져도 차린 게 없다는 주인의 허풍, 튀는 옷차림은 싫어하지만 유행에 민감한 명품족의 단체심리, 뇌물은 혐오해도 받지 못하면 나만 홀로 바보가 된다는 이상한 공평의식까지, 유쾌하고도 진솔한 중국인 이야기가 시시각각 펼쳐진다.
중국도 우리처럼 배고프던 시절이 많았던 모양이다. 모든 것을 먹는 것과 연관시키는 ‘범식주의(泛食主義)’가 팽배하다. 생계를 도모하는 것을 ‘입에 풀칠한다(糊口)’고 표현하는가 하면, ‘밑천을 까먹는다’ ‘서북풍을 마신다’ ‘누명을 먹는다’ ‘야단을 먹는다’ ‘손해를 먹다’ ‘식은 죽 먹기’ ‘수박 겉핥기’ 등 ‘먹는 문화’가 셀 수 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차가 신호등에 걸려 움직이지 못할 때도 ‘빨간불을 먹었다’고 말한다. 만나면 첫 마디가 ‘밥 먹었냐’다. 중국 민족의 문화심리 깊은 곳에는 먹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며,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생명을 부여한다는 관념이 깔려 있다. 그래서 발전한 것이 초대 문화다. 중국인은 손님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그 이면에는 정을 나누고 관계를 맺고 형제의식을 키워 가려는 의식이 깔려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초대를 받으면 꼭 초대를 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 남에게 부탁할 때는 돈 봉투도 보내야 하지만, 밥도 함께 먹는 것이 좋다. 돈 봉투만 보내고 식사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한 차례의 거래로 인식한다. 거래만 있고 우정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거’다. 형제의식을 느끼게 하는 ‘훠거’ 자체에 중국문화가 담겨 있다. 중국인과 어느 정도 사귀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의 담배를 꺼내 다른 사람에게 주어보라. 상대는 무척 좋아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너와 나를 가리지 않는 ‘정말 친한 친구’로 인정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인을 알듯 알듯 하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중성 탓이다. 강직한 듯 원만하고, 솔직한 듯 속물스럽고, 의심이 많으면서도 쉽게 믿고, 고지식하면서도 융통성이 있고, 예의를 따지면서도 공중도덕은 소홀하고, 향을 태우고 점을 보면서도 종교를 믿지 않는 것이 중국인이다. 그렇다고 중국인을 두 얼굴로 보는 것은 오산이다. 중국인은 항상 똑같고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 다만, 그 원칙과 법칙이 너무 많아서 종종 모순으로 나타날 따름이다. 일례로 이런 것이다. 중국인은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고, 뇌물은 증오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자기도 반드시 가져야 체면이 서기에 그것이 뇌물이 됐든 감정이 됐든 간에 똑같이 나눠 가져야만 비로소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 문화관련 서적들이 피상적인 중국만을 다뤄온 측면이 있었다. 이 책은 중국인 학자가 내부적 시선으로 중국인의 진면목을 탐구하고, 구체적 예시를 통한 신뢰성 있는 설득으로 독자의 요구를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책들과 차별화한다. 이 책을 보면 그가 펴낸 ‘품인록’ ‘삼국지 강의’ ‘초한지 강의’ 등이 왜 중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는지 알 수 있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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