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닷컴] 노무현 전 대통령은 16일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기록물 반출 논란과 관련해 "기록사본을 돌려주겠다"면서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고,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를 통해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느냐"고 말하며 반환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여러차례 만남 및 전화 통화를 통해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고 말한 사실을 밝힌 뒤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열람권 보장을 협조해달라고) 전화를 드렸더니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다"면서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고 몇차례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수석이 설명드릴 것'이란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다"고 비판하며 재차 "기록은 돌려 드리겠다.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느냐"고 반문한 뒤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놓은 말도 뒤집어 버린다. 그래서 이 대통령에게 상의를 드리는 것"이라며 이 대통령이 나서서 열람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질문을 하나 드리겠다"며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하느냐"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이고,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이냐"고 반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이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이냐.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갖고 있으면 정말 큰 일이 나는 게 맞느냐"면서 "언제쯤 서비스가 될 것인지 한번 확인해 보셨느냐. 볼 수 있게 돼 있는 나의 국정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이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소설은 전혀 근거없는 공상소설"이라며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고 청와대 참모들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선다.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한다"고 편지를 끝맺었다.
/ 유명준 기자 neocross@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전문]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이명박 대통령님,
기록 사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습니다.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버티었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습니까?
내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끝에 답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때도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습니다.
우리 쪽 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담당 수석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가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록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 맞습니까?
지금 대통령 기록관에는 서비스 준비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언제 쯤 서비스가 될 것인지 한 번 확인해 보셨습니까?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입니까?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16일
16대 대통령 노 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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