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에 ‘불똥’ 차단 의지
◇이명박 대통령이 21일 오후 청와대를 방문한 유종하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얘기를 나누던 중 피곤한 듯 눈 주위를 만지고 있다. 허정호 기자 |
청와대는 민주당 등 야권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등 관련자 파면과 함께 국정조사 카드까지 거론하자 “흠집내기용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특히 김 내정자 거취 문제에 대해선 “논의되는 것이 전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내부 기류는 다르다. 이번 사건으로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이 이슈화되면서 정치적 파장이 확산되자 우려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특히 전날 서울 도심에서 경찰 진압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시민 1000여명이 참여한 촛불집회가 벌어지자 청와대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격이다. 한 핵심 관계자는 “사태추이가 예사롭지 않다”며 “조속하고도 과단성 있는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의 조기 자진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이날 청와대에서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전날만 해도 김 내정자를 어떤 식으로든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여권 내부에서 김 내정자 사퇴 불가피론이 ‘대세’를 형성하면서 청와대 분위기도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 내정자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다”며 “김 내정자 문제로 질질 끌면 2월 국회가 안 된다”고 거듭 조속한 문책론을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김 내정자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용산 사건과 관련해 “내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청와대로선 일단 ‘부담’을 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김 내정자의 사퇴를 전제로 적절한 타이밍을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불똥이 행정안전부 장관인 원세훈 국정원장 내정자에게로까지 튀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에서다. 김 내정자의 사퇴 시점이 너무 이르면 원 내정자가 즉각 다음 타깃이 될 수 있고, 너무 늦으면 여론 악화가 뒤따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허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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