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에 관한 기억을 묻는 질문에 그는 “가난한 사람의 든든한 배경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어려운 곳을 많이 찾아다니셨어요. 철거촌·판자촌 등 가난하고 힘든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셨어요.”
운전기사로 30년 넘게 일해 온 그는 “추기경님은 곁에만 있어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분”이라고 울먹였다.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언제 어디서든 손을 붙잡고 위로하고 함께 기도했다. 그는 “추기경님은 본인을 위해 무엇을 하기보다 나눠주는 데 항상 신경을 썼다”며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 있었을 뿐 아니라 돈이라는 것에 아예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가 김 추기경과 연을 맺게 된 것은 1978년 3월 추기경의 차량을 운전하게 되면서부터다. 가톨릭출판사에서 운전사로 일했던 게 계기가 됐다.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처음에 뵀을 때는 눈매 때문에 매섭게 보였다”며 “곁에서 일해 보니 이분만큼 다정하신 분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김 추기경은 과묵한 편이었지만 말 한마디엔 늘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함이 묻어났다.
“추기경께서는 당신의 바쁜 일정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바쁘게 하는 것에 늘 미안해 했어요.” 10여년 전 운전기사도 휴일엔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 전용차를 쓰지 않고, 국제가톨릭형제회 회원의 소형차를 타고 가는 게 언론에 노출된 일은 이제 유명한 이야기가 돼 버렸다.
입원한 뒤에도 김 추기경은 주변 사람들부터 챙겼다. 그는 “얼마 전 병실을 찾았을 때 ‘나 때문에 힘들지 않느냐’고 미안해 하셨다”며 “오히려 그런 말씀을 하시니 더 잘 모시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김 추기경은 사랑을 실천하면서도 스스로 모자란다며 늘 아쉬움을 토로하셨다”면서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늘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도 김 추기경의 선종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는 “늘 차 안에서 성문을 읽고 기도하시던 모습이 선하다”며 “선종 소식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김 추기경에 대한 사람들의 추모의 마음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전화를 끊었다.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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