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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28>역사학자 이종욱 서강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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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2-01 15:11:56 수정 : 2010-02-01 15: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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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뿌리는 신라”… 관학파에 맞선 사학계의 비주류
◇기억에서 사라진 군주 김춘추를 불러낸 이종욱 서강대 총장은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기원을 신라에서 찾고 있다. “주류로 자리를 잡았을지라도 왜곡된 시각과 철학은 새로운 발견과 논리에 따라 그 자리를 내주는 게 역사”라는 게 지론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주류로 자리 잡은 왜곡된 민족사학도 대폭 손질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원영 기자
세계일보사가 1억원 고료를 내걸었던 세계문학상은 2005년 그 첫 수상작으로 김별아의 ‘미실’을 선정했다. 신라의 미실궁주(美室宮主)는 이 소설의 제목과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3명의 풍월주와 사랑을 나누고, 진흥왕을 비롯해 3대에 걸쳐 후궁 노릇을 했다. 여러 남성에게 일부종사(一婦從事)를 시키고 정사(政事)에 적극 참여하며 운명을 개척한 여걸이었다. 성녀(聖女)와 창녀의 속성을 모두 보여주고자 했던 작가의 ‘내공’ 덕택이었는지,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랫동안 이름을 올렸다.

소설 출간을 계기로 ‘신라 여성 미실’에 대한 관심은 크게 늘게 된다. 요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의 성공적 안착에도 도움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의 시각으로 미실의 행각은 고약하기 그지없다. 동방예의지국에서, 그것도 왕궁에서 벌인 행태라니. 그녀의 일생은 21세기 한국인의 사고로는 용납하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미실의 역사적 존재를 인정하는 이들마저 그녀를 ‘소설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인물’로 여기기도 한다.

미실의 이야기가 사학자 등 학계에서 언급된 것은 20년밖에 안 된다. 1989년 2월 부산에서 발견된 ‘화랑세기(花郞世紀)’ 필사본에서 미실에 관한 내용이 담긴 게 확인되면서부터다. 그후 6년 뒤에 162쪽 분량의 또 다른 필사본이 발견된다. 화랑들의 전기를 담은 화랑세기는 신라 문필가 김대문의 작품으로 그때까지 이름만 전해져 왔다. 필사본의 등장으로 신라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 말’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학계의 흥분도 잠시였다. 학자들은 필사본이 가짜라고 생각했다. 필사본을 남긴 사람이 일본 왕실도서관 사무촉탁이었던 박창화(1889∼1962)였다는 점에다가 내용이 작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대학원 시절 이후 40년 동안 신라사에 천착해온 이종욱 서강대 총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한 세대 넘게 사학과 교수로 봉직하다가 29일부터 총장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임기 시작 며칠을 앞두고 그를 연구실에서 만났다. 총장실에서 업무를 보더라도 그는 간혹 연구실에서 신라사를 연구할 것이다. 땀을 흘리며 찾아간 연구실 문에 ‘이종욱’이라는 문패가 기자를 반긴다. 그의 연구실 문의 명패는 특징이 있다. 1개가 아닌 2개의 명패가 있다. 문 바깥쪽에는 찾아온 이를 위해 자신의 이름을, 안쪽에는 스승의 이름을 달았다. ‘신라국가형성사 연구’로 학위를 받을 때, 제자의 학문적 열정을 평가했던 당시 스승에 대한 도리에서다.

학문은 학계의 이기심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이는 스승과 제자였던 그가 공유했던 생각이었다. 다수 사학자가 외면하고 있지만 ‘화랑세기 필사본’만 해도 진본이라고 여긴다. 여러 자료와 증거를 살펴볼 때 결코 가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가령 필사본에서 경주 월성 동쪽에 ‘하수구의 연못’인 ‘구지(溝池)’를 언급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유적은 필사자 박창화가 숨지고 한참 뒤에 발굴된다.

학문에 대한 치열함 덕택에 그간의 저술량도 만만찮다. 단행본만 20권에 이른다. 1998년 이후 10년 동안에는 ‘화랑’ ‘색공지신 미실’ 등 17권을 저술할 정도로 연구에 매진했다. 이달 중순 내놓은 최신작은 ‘신라의 피, 한국·한국인을 만들다’는 부제를 단 ‘춘추’(효형출판). 이 총장은 “김춘추는 한국·한국인을 존재케 한 가장 위대한 인물이며, 삼국통일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며 우리 역사상 최대의 M&A를 성사시킨 군주”라며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신라를 높게 평가한다.

이번 저술을 위해 그는 2007년 9월부터 안식년 1년을 죄다 경주에서 보냈다. 1년 동안 전문가를 상대로 각기 12번에 걸친 강연과 답사를 제외하고는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 찾기에 열정을 쏟았다. 일례로 사적 제245호인 경주 나정(蘿井)을 여러 차례 찾았다. 박혁거세는 우물 옆에서 태어났다고 탄생 설화에 언급되는데, 이곳에서 설화와 밀접한 배경을 지닌 우물의 흔적이 발굴된다. 이 사례를 들며 “역사와 기록, 혹은 전승되는 말은 일치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보통의 경우 총장에게는 결코 ‘소수자의 이미지’가 겹쳐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는 학문적 시각에서 소수자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신라의 중요성’을 유독 역설하는 것도 보편적인 우리의 정서와는 다르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우리가 누구냐’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의 뿌리는 고구려나 백제가 아닌 신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문화, 사회적인 유산은 대부분 신라에서 이어진 것이지요. 우리 역사에서 신라를 변방으로 몰아내서는 안 돼요. 신라는 사실 오늘날 우리와 한국의 근원입니다.”

그의 최근 저서를 읽었지만, 이내 수긍하기는 곤란하다. 마치 재야 사학자의 주장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번 찔러보기로 했다. “신라는 ‘당나라’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을 불러온 나라가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니 금세 반응이 나온다.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민족 개념이 있었을까요. 신라는 물론 고구려와 백제에서도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개념이 결코 없었어요.”

이때다 싶었는지, 학자라면 학문적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설명을 이어간다.

“우리에게 ‘민족’은 관학파 주도의 현대사학이 주입한 해방 이후의 개념입니다. 당시에 민족은 없었어요. 신라가 통일하면서 9서당에 고구려, 백제, 말갈 사람의 군단을 편성한 것을 민족융합책의 근거로 드는데, 그것도 웃겨요. 병사들을 9서당에 편성했을 뿐이지, 지휘관은 죄다 신라인이었어요. 피정복자였던 고구려와 백제인들은 역사적인 흐름에서 점차 사라졌지요.”

해방 직후 손진태와 이병도 등 학문 권력을 장악한 이들이 ‘관 주도의 국사’를 만들면서 오류가 생겼다고 설명한다. 국가를 등에 업고 민족·민족사를 국민의 역사관으로 만들어내며 지나치게 ‘민족’을 강조하며 신라가 도태됐다는 것이다. 만주를 당나라에 내준 신라가 대한민국 건국 초기 사학자들에게는 결코 자랑스럽지 않는 나라였을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이 있어요. 2000년 인구센서스 조사 결과 한국인의 286개 성씨 중 대성(大姓)은 거의 신라인을 시조 혹은 중시조로 하고 있어요. 김, 이, 박, 정, 최, 손씨 등이 다 신라인을 시조로 하고 있잖아요.”

이 총장의 말대로 현대사회에서 단군왕검이나 고주몽을 시조로 두고 있는 성씨는 없다. 통일신라 이후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피정복자 처지에서는 자신을 숨겨야 하니까. 불교와 토착신앙의 결합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반도에서는 고구려나 백제보다는 산신각 등에서 보듯 신라의 민속신앙과 더 잘 조화를 이뤘다는 설명도 이어진다. 오늘날 군과 면을 포함한 지방행정조직의 명칭도 그 뿌리는 신라에 두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아버지(조선)와 할아버지(고려)를 있게 한 직계 증조부(신라)는 창피하게 여기고, 증조부의 형제들(고구려와 백제)에 대해서만 안타까워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이 총장은 당분간 전공 분야 연구보다는 학교 행정에 더 관심을 둬야 한다. 대학은 대학다워야 하고, 학자는 학자다워야 한다는 철학 덕택에 그는 서강대 최초의 본교 출신 총장이 됐다. 학문에서처럼, 그는 행정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소수 의견도 받아들일 생각이다. 대학 안팎에서는 총장 선거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 그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총장 출마에서 임명까지 그가 지출한 선거비용은 복사비 9만원이었다고 한다.

“임기 내에 무엇인가 확실한 성과를 내겠다는 생각보다는 적어도 25년 후를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있는 동안 조그만 돌 하나 올려놓으면 시간이 지난 뒤에는 역사로 남겠지요. 이런 차원에서 교수의 새로운 연구는 대폭 지원하고, 학생에게는 최고의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지요. 특히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과 전인교육을 위해서 힘을 보태겠습니다.”

bali@segye.com

■이종욱 총장은…

1946년 경기 장단 출생(지금은 파주시에 속함). 서강대 사학과 졸업 후 석사와 박사 학위 취득. 미국 캔자스대에서 인류학을 접하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에서 인류학·고고학·사회학을 연구했다. 영남대학교 국사학과를 거쳐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만났다. 한국 고대사 연구 체제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식민사학에서 비롯된 20세기 한국 사학계의 민족주의 경향을 넘어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서

‘신라상대 왕위계승연구’ ‘화랑세기’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역사충돌’ ‘화랑’ ‘색공지신 미실’ ‘춘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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