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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많은 한국… 또 다른 이웃 포용엔 왜 인색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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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31 18:43:33 수정 : 2011-01-31 18: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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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인 가네쉬 리잘이 본 ‘코리안 드림’의 애환
한국, 한국인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세계 13위 경제대국, G20(주요 20개국) 회원국 자리에 올랐다.

‘압축성장’의 화려한 빛 속에 계층 간, 지역 간, 이념·세대 간 갈등은 켜켜이 쌓였다.

갈등의 고리를 끊지 않고선 선진국 문턱을 넘기 어렵다. 지금 한국사회에 ‘공존’을 위한 지혜가 필요한 이유다.

◇가네쉬 리잘씨가 31일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자신이 운영하는 음식점 ‘칸티풀’에서 지난 10여년간의 한국 생활을 담담하게 회상하고 있다.
안산=김영석 기자
1999년 한국에 산업연수생으로 들어와 지금은 경기 안산에서 ‘꽤 잘나가는’ 식당 주인으로 자리 잡은 가네쉬 리잘(33)씨. 그는 원하는 ‘코리안 드림’을 어느 정도 이뤄낸 네팔 출신 근로자이다.

31일 안산 단원구 원곡동 ‘국경없는 마을’ 외국인주민센터 맞은편 골목 내 3층 건물 이층에 자리 잡은 리잘씨의 인도·네팔음식 전문점 ‘칸티풀(Kantipur)’은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벽면 전체를 불상과 금박장식 등 네팔식으로 꾸민 100㎡ 공간의 칸티풀은 카레를 주 재료로 한 인도·네팔식 빵과 밥, 각종 차 음료로 자국인뿐 아니라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불황을 모르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리잘씨는 “2008년 3월 식당을 연 뒤 한국의 경기 불황과는 달리 매년 20∼30%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며 “지금은 아내(32)를 포함해 5명이 일하는 식당으로 성장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하루 매출 80만∼90만원, 월 매출 2700만∼3000만원을 올린다.

그가 여기까지 오는 데는 타고난 성실함에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의 도움이 컸다. 네팔에서도 오지에 살던 그는 1999년 친구들이 코리안 드림을 위해 하나 둘씩 한국으로 향하자 이 대열에 동참해 산업연수생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비자 만기로 3년 후 귀국한 리잘씨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그동안 번 돈으로 4층짜리 호텔을 빌려 4년간 운영했다. 그러나 정국 불안이 계속되자 다시 한국에 가서 식당을 운영하기로 마음먹고 각종 요리법을 익혔다. 2007년 한국에 돌아온 그는 서울과 의정부, 평택, 천안 등 전국을 돌며 대상지를 물색하다가 지금의 ‘국경없는 마을’에 정착하기로 결정했고, 4000만원으로 식당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식당 인수와 홍보, 영업을 위해 발벗고 나서준 곳이 외국인주민센터라는 게 리잘씨의 설명이다. 그는 돈을 벌면 더 많은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식당 환경 개선에 나섰다. “식당 문을 연 뒤 매년 한 차례씩 지금까지 세 차례나 식당 내부를 리모델링했다”며 “이제는 어떤 손님을 맞아도 부끄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의 최종적인 꿈은 사회사업이다. 네팔에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처럼 한국에서 소외받는 다른 외국인과 한국인을 돕는 것이 최대 희망이다. 그는 매월 수입의 일정액을 소외된 이웃을 위해 쓰고, 함께 일하는 종업원에게도 산업연수생 이상의 임금을 지불한다.

하지만 한국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3월 네팔에서 함께 온 부인과의 사이에서 첫 아이를 낳을 예정인 리잘씨는 “아이가 태어나는 대로 네팔로 보내 10살 때까지 교육한 뒤 데려오겠다”고 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교육과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인만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영주권이 필수인데 이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리잘씨는 “한국 사람들의 천성인 친절함과 달리 한국 정부는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한국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에게 아직도 문을 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잘씨처럼 한국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 잡은 외국인 근로자는 많지 않다. 여전히 대부분은 한국의 낯선 문화와 저임금, 임금 체불, 내국인과의 차별 및 인권 침해로 고통받고 있다.

안산 시화공단에서 3년간의 산업연수생 생활 등 5년 동안 근로자 생활을 마치고 오는 5월 고향인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웬후마잉(32세)씨는 한국 생활에서 겪은 아픔을 담담히 털어놨다. “2005년 산업연수생으로 일을 시작하자마자 회사는 생산라인 투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야근을 시키고 월급도 적게 주는 등 많은 차별을 했다”고 말했다. 

또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호칭이나 음식, 언어 문제 등으로 겪는 고통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이는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 대부분이 당하는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번 돈으로 베트남에 집을 한 채 마련하고 한국에서 배운 기술을 이용해 사업도 해볼 계획이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 체불액은 2007년 62억8000만원에서 2008년 170억3700만원, 2009년 236억8500만원으로 크게 늘었다. 체불 외국인 근로자는 2007년 2249명에서 2008년 6849명, 2009년 9452명으로 급증했다. 임금체불 사업장 역시 2007년 1097곳, 2008년 3269곳, 2009년 4061곳으로 늘었다.

국내 외국인 노동자는 미미하지만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는 2010년 9월 현재 전체 외국인 123만7517명 가운데 불법체류자 5만1068명을 포함해 54만6954명으로 전년 동기 54만9282명(불법체류자 4만9647명) 보다 2328명 줄었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대표 김해성 목사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며 “이들이 이방인이 아닌 우리 이웃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관련 정책 집행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산=김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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