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뇌부 거느리고 조문객 접견… 김옥도 참배한 후 머리 조아려
김정일 ‘태양상’ 영정 곳곳 설치… 주민들에 ‘3대 세습’ 충성 독려
외국인 외출 금지·출국 요구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에 따른 조문행사를 자신에 대한 충성서약식으로 활용하는 ‘조문정치’를 펴고 있다. 지난 20일 당·정·군 고위간부들을 이끌고 김 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가장 먼저 참배한 김정은은 장의위원장 겸 상주로서 빈소를 지키며 국내외 조문객을 맞았다고 북한 매체들이 2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가 이날 공개한 전날 고위간부 참배 장면에서 조문객들이 김 부위원장 앞으로 가 허리를 90도로 굽혀 깍듯이 인사하는 모습이 담겼다. 군부의 일부 고위인사는 인사를 올리며 거수경례로 충성을 다짐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넷째부인 김옥(47) 국방위원회 과장이 울음을 토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김옥은 검은색 한복을 입고 김 위원장 시신 앞에서 머리를 숙이며 오열했다. 이어 김정은 부위원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장의위원들 앞에서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김옥은 2004년 김 부위원장의 모친인 고영희의 사망 이후 김 위원장과 동거하며 중국·러시아 방문에 동행하는 등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 232명의 장의위원 명단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 참배하기 위해 모인 노동당 간부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이 모습은 21일 북한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됐다. |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 위원장의 영정과 추모소가 평양을 비롯한 전국에 마련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은 대형 영정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마찬가지로 ‘태양상’이라고 지칭했다.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태양상이 20일 김일성 광장, 4·25문화회관 관장, 당창건기념탑, 평양체육관 광장 등 수도 여러 곳에 모셔졌다”며 “평양교예극장과 하나음악정보센터건물의 정면에도 태양상이 모셔졌다”고 보도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이 발표된 19일 낮 12시부터 만 하루동안 500여만명의 평양시민들이 추모했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는 19일부터 연 사흘째 오전 9시부터 사실상 종일 방송을 하며 북한 사회의 추모행렬과 김 위원장의 과거 활동, 추모 노래 등을 반복해서 내보내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추모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각국에 있는 북한대사관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 등이 전날 자국 주재 북한대사관을 직접 찾아 조의를 표하기도 했다. 또 북한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조전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영구를 지키면서 조문객인 각국 외교단, 재외동포 대표 등을 접견하고 일일이 악수를 하는 등 북한의 새 지도자임을 국제사회에 과시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은 부위원장이 빈소를 지키면서 후계자임을 과시하고 사실상 충성서약을 받는 셈”이라며 “악수라는 스킨십으로 자신의 체제를 받칠 인사들을 다독이는 모습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생모 김정숙에 대한 추모 분위기도 조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 사망 소식에 그의 생모 활동을 함께 다루면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오는 24일을 김정숙의 94번째 생일로 부각시키면서 이날을 기념해 이탈리아, 방글라데시의 친선단체들이 이들을 칭송하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내부 추모 분위기 확산과 더불어 외부와의 접촉에 대한 단속에도 나섰다. 북한은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알린 이후 북한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외출을 금지하거나 출국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의 대학에서 유학하는 한 중국 학생은 “대학에서 교수가 중국과 러시아 학생들에게 가급적 외출을 삼가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이 내부 정보 유출을 우려해 평양 주민이 외국인과 접촉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김수민 선문대 교수는 “바깥세상이 북한을 주목하는 시점에서 김정은 후계체제를 강조하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면서 “김정숙에 대한 부각도 결국 이 맥락에서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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