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 느낀 中 정보망 급습에 무너져
盧정부때 위상 흔들… 인적 물갈이도
김정은 한반도 정세 핵심 변수 부상
정보수집·분석 시스템 강화 목소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군·정보기관의 대북 정보·첩보 수집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 북한이 특별방송을 통해 공개하기까지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을 몰랐을 뿐 아니라 사망 정황, 이후 북한 내부 움직임에 대해 정확한 분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후계체제에서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한반도 정세에 핵심 변수로 부상한 만큼 대북 정보 수집·분석 능력과 정보 공유 시스템이 강화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무너진 인적 정보 라인
김대중(DJ) 정부 시절인 1999년 천용택 당시 국정원장이 기자들에게 ‘오프 더 레코드’(기사보도제한)를 전제로 전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김정일 위원장이 스위스에 있는 애인과 전화로 밤에 무슨 얘기 하는 줄 아시나. 무슨 옷을 입고 있느냐, 샤워는 했느냐. 시시콜콜하게 묻는다.” 통화를 도청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김 위원장에 대한 국정원의 정보력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1997년 16대 대선 당시 기획된 소위 ‘총풍사건’. 오정은 청와대 행정관 등 이른바 ‘총풍 3인방’이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했으나 실패했다. DJ정부 출범 후 검찰은 이들이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에서 평양으로 보낸 팩스 감청 자료를 증거로 확보했다. 훗날 검찰 간부는 기자에게 “당시 팩스 감청은 국정원이 서울에서 한 것”이라고 실토했다. 1990년대만 해도 국정원의 대북 정보·첩보망은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1997년 2월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탈북, 같은 해 8월 이집트주재 북한대사 장승길씨의 미국 망명 등은 정보기관의 고급 정보 확보가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근 국정원 등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망 무력화는 휴민트(HUMINT·인간정보) 붕괴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많다. 1999년 우리 정보기관 활동에 위협을 느낀 북한과 중국이 대북정보망 거점인 랴오닝성 선양시 모처를 급습해 30여명의 우리측 요원을 체포한 사건은 중국 내 대북정보망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1997년 정권이 교체된 이후 소위 ‘북풍사건’에 연루된 대북정보라인에 대한 ‘소탕’, 1999년 중국 선양 사건 등으로 인적 정보망이 붕괴되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대북포용정책’을 승계한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북정보망은 물론 국정원 위상 자체가 흔들렸다.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가 사라졌고, 대대적인 국정원 인적 물갈이가 이뤄졌다.
국정원 전경 |
대북 정보는 휴민트와 함께 첨단장비를 활용해 신호정보를 포착하는 ‘시진트(SIGINT)’가 있다. 시진트는 영상정보와 통신정보로 구분된다. 영상정보 확보 수단은 RF-4C 정찰기가 대표적이지만 노후화됐다. 금강 정찰기도 있다. 평양 인근의 농구공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으나 크기가 작아 장시간 비행하기 힘들다.
정찰기의 대명사인 주한미군의 U-2기도 하루에 한 차례 이상 오산기지를 이륙해 정찰활동을 펴는데 평양∼원산선 이북의 북한 후방지역은 감시하기 어렵고 날씨가 나쁘면 뜰 수 없다. 김 위원장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된 전용열차는 주로 ‘키홀(열쇠구멍)’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미국의 KH-12 첩보위성이 추적한다. 300∼500㎞ 상공에서 15㎝ 크기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북한 상공에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어서 24시간 실시간(實時間) 감시는 불가능하다.
통신감청 정찰기로는 한국군의 백두, 미군의 RC-135가 있다. 백두는 북한 전역의 교신을 엿들을 수 있다. 이러한 통신감청은 무선 교신만 가로챌 수 있고 광케이블 등을 통한 유선 교신은 잡아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북한은 한·미 양국 군이 통신감청을 할 수 없도록 1990년대 중반부터 광케이블을 까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해왔다. 문제는 이러한 장비를 통한 정보력도 휴민트가 부실한 상황에서는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외국 정보기관에게도 북한은 정보 수집이 어려운 나라로 꼽힌다. 북한은 1930년대 러시아의 이오시프 스탈린 정권 이후 가장 정보 확보가 힘든 나라라고 20일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 접근이 어려운 데다 11년째 지하의 광케이블 네트워크망을 이용하고, 북한 출신의 첩보요원을 모집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병진·김채연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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