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 돌리는 부부
올해로 결혼 3년차인 A(29·여)씨는 요즘 남편과 대화가 거의 없다. 6년 동안 연애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해주던 남편이었는데, 결혼 후 확 변했다. 집에 오면 손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간단한 집안일도 도와주지 않는다. 잔소리를 하면 신혼 때는 마지못해 하는 시늉이라도 하더니 요즘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연애할 때 자신에게 잘하던 남편을 보며 꿈 같은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공주처럼, 여왕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달콤한 환상은 이미 깨졌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도 크게 느끼고 있다. 다투는 일이 많아졌고, 그럴수록 남편의 귀가시간은 늦어졌다.
남편 B(35)씨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다. A씨의 이중적인 태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폭력적이고 독재자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내는 편안하고 포용심 많은 남편이 돼 주기를 바랐다. 양성평등 관점에서 가사도 분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가장의 모습처럼 가족 부양 책임을 남편이 다 짊어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아내가 자신에게서 아버지와 정반대의 모습은 물론 똑같은 모습도 기대하는 것 같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럽다. 날이 갈수록 아내가 자신에게 원하는 게 많아졌고, 그만큼 부담이 커졌다. 그럴수록 그는 더 멀리 달아날 궁리를 하게 됐다. 집에 들어가 아내와 마주치는 것조차 점점 불편해졌다. .
#2 눈치보는 부모
맞벌이를 하는 여성 C(33)씨.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있다. 직장에서 돌아와 보니 아이의 얼굴에 새로운 상처가 생겼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넘어져 다쳤다고 했다. 약도 제대로 바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럴 때면 시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는 것인지 방치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가 다칠 때 어머니는 뭐 하셨어요”라며 따지고 싶지만 꾹 참았다. 형편이 어려워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싫기만 하다. 그렇다고 아이를 친정에 맡길 수도 없는 상황. 시어머니에게 드리는 용돈으로 차라리 아이를 돌볼 사람을 구할까도 생각해 봤지만 부담이 너무 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아들 집에서 살며 손자를 돌보고 있는 D(64)씨. 맞벌이를 하며 어렵게 사는 아들 내외가 안쓰러워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손자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집안일은 물론 오후엔 어린이집에서 손자도 데려와야 한다. 음식 준비도 해야 한다.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고생해서 아들을 키워 놨더니 이제는 손자까지 키워야 한다. 체력은 갈수록 떨어진다. 아이는 자신이 키우는데 며느리가 양육 방식에 대해 잔소리를 할 때면 짜증이 앞선다. 하루에 몇 번씩 며느리에게 “네가 키워라”고 말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손자가 다치기라도 하면 며느리 눈치까지 봐야 한다. 젊었을 때는 시어머니가 어렵고 불편했는데, 늙어서는 며느리에게 그런 부담을 느끼는 자신이 한없이 불쌍해 보인다.
#3 비뚤어진 아이
부모가 이혼한 뒤 엄마와 살고 있는 E(16)군은 일탈행동을 일삼는 ‘문제아’다. 편의점을 털다가 붙잡힌 적이 있다. 오토바이도 훔쳐 타고 다녔다. 친구들에게 금품도 빼앗았다. 학교에 결석하는 날 또한 적지 않다. 부모에 대한 적개심과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이다. 그는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E군의 어머니 F(45)씨는 이혼 후 감정조절을 잘 못하게 됐다. 남편의 외도로 가정이 깨졌지만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기분이 나쁠 때면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곤 했다. 아들과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사춘기가 되자 아들이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벗어났다. 남편도, 아들도 모두 자신을 떠나버려 외톨이가 된 느낌이다.
E군의 아버지 G(47)씨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들이 일탈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무랄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아버지 역할을 한답시고 가끔 만나는 아들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최대한 물질적 보상이라도 해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들이 자신의 일탈행동을 합리화하는 것 같아 불안하다. 이혼으로 떨어져 살게 됐어도 아이가 반듯하게 성장하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특별취재팀=문준식·이우승·안용성·김수미·우상규·조현일·송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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