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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글로벌 금융위기 후 비정규직만 희생 컸다

입력 : 2013-09-05 01:37:48 수정 : 2013-09-05 10: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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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만료, 정규직 해고의 25배
2010년엔 149배로 껑충 뛰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A사는 매출이 급격히 줄자 직원 1만명을 구조조정했다. 당시 A사뿐 아니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몰아쳤고, 정규직 직원들은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10년 후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A사에서 경제위기를 이유로 해고된 정규직은 없었다. 다른 회사도 십수 년을 함께한 직원들을 하루아침에 자른 사례는 많지 않았다. 대신 기업들은 단기간, 임시 채용한 계약직 직원들을 계약만료·해지라는 합법적 수단을 동원해 대거 거리로 내몰았다. 외환위기 때 정규직 해고로 몸살을 앓았던 기업들이 쉽게 자를 수 있는 계약직을 대거 채용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자른 것이다.

3일 한신대 전병유 교수팀이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펴낸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실직형태와 추이에 관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300인 이상 기업의 정규직 직원 해고율은 29.7%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20.5%와 7.2%로 떨어졌다. 반면 계약직에게 사실상 해고를 의미하는 계약만료율은 2000년 42.4%에서 2009년 72.8%, 2010년 89.2%로 10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전 교수는 “2000년 이전 자료는 고용정보원에 등록돼 있지 않지만 외환위기 당시에는 사업장별 정규직 구조조정이 많았던 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구조조정보다는 계약직 고용해지로 대응하는 형태가 뚜렷했다”며 “임시직과 계약직이 고용조정의 표적이 되고,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고용안정성이 보장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규직이 해고당한 비율과 계약직이 계약만료당한 비율을 비교하면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2008년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계약만료된 계약직 숫자는 해고된 정규직 숫자 대비 25.3배였다가 2009년에는 36.7배로 늘었고, 2010년에는 149.1배까지 치솟았다.

전 교수는 “비정규직의 고용불안정성은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뚜렷하게 나타났다”면서 “경제위기에는 노동시장에서 취약계층부터 타격을 받고, 이로 인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심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경제위기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고용 유연성인데, 우리나라는 정규직 해고가 너무 어려워 하도급을 쓰고 일감이 없으면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다”며 “고용 유연성이나 복지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은 실정에서 기업에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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