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급식 지원으로 남은 돈, 대출상환·저축… 소비 연결 안돼
용돈·경조사비도 둔화세 뚜렷, 2012년 부채비율 16.8%… 0.7%P↓
“미래가 정말 불안해서 솔직히 돈 쓰기가 겁납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회사원 김민철(38·가명)씨는 두 돌이 되지 않은 막내아들이 있어 정부로부터 매달 보육료 15만원을 받는다. 큰아들이 교육비를 정부가 전액 지원하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지난해까지 매달 어린이집에 내던 30만원 남짓한 비용도 고스란히 아낄 수 있다. 그는 따지고 보면 한 달에 45만원 정도 지출 여유가 생긴 셈. 그런데도 김씨는 이전보다 씀씀이를 늘리지 않았다. 식료품과 술은 물론이고 반지나 목걸이와 같은 액세서리 구입비용을 먼저 줄였다. 작년 말에는 10여년간 피워온 담배도 끊었다. 절약한 돈은 모두 대출금을 갚는 데 썼다. 김씨는 “경기가 언제 좋아질지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이라 돈이 생기면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해 빚을 갚거나 저축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비지출을 줄여라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정부의 다양한 대책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가계소득 대비 가계지출 비중을 줄이는 가구가 늘고 있다. 정부 경제정책이 신뢰를 얻지 못한 탓이 크다.
이런 경향은 통계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정책 효과와 상관없는 시계·액세서리 지출 항목의 경우 지난해 월 2805원으로 2011년보다 19.3% 감소했다. 가위·면도기·헤어드라이기 등 이미용기기 구입비도 732원으로 4.0% 줄었다. 보건 지출항목은 2010년 15만2606원, 2011년 15만7567원, 지난해 16만543원으로 전년 대비 증가율이 각각 6.8%, 3.3%, 1.9%로 급격하게 둔화했다. 아파도 돈이 아까워 병원이나 약국을 찾지 않는 것이다. 술과 담배(2만7913원)의 지출액도 전년에 비해 0.2% 증가하는 데 그쳤다.
◆비소비지출도 증가세 둔화
가계지출 중 비소비지출인 가구 간 이전지출의 증가 속도도 느려졌다. 따로 사는 자녀나 부모의 생활비 또는 용돈, 경조사비 같은 가구 간 이전지출은 2010년 20만5091원으로 전년보다 3.7% 증가했지만 2011년에는 20만7827원으로 1.3%, 지난해에는 20만8177원으로 고작 0.2% 늘었다. 이에 따라 비소비지출 증가율은 2010년 8.0%에서 2011년 7.1%, 지난해 5.3%로 하락세였다.
각 가정의 지출 절감 노력은 올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주류와 담배 항목은 올 1, 2분기 월 지출액이 2만6668원, 2만7455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2.9%와 1.1% 줄었다. 음식·숙박 지출도 1분기 30만1935원, 2분기 32만8700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각각 0.7%와 0.2% 감소했다. 이미용기기는 작년 3분기(-19.5%)와 4분기(-23.6%)에 이어 올 1분기(-5.3%), 2분기(-11.5%)에도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통신비(15만2335원)와 시계·장신구(2606원)는 2분기 들어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1.5%와 3.3% 감소로 돌아섰다.
◆자산은 늘리고 부채는 줄이고
이렇게 아낀 돈은 어디에 썼을까.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자산은 2011년 2억9765만원으로 전년보다 7.5% 늘어난 데 이어 작년에는 3억1495만원으로 5.8% 증가했다. 반면에 부채는 2011년 5205만원으로 전년보다 12.7% 늘었지만 작년에는 5291만원으로 1.7%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히 금융부채는 2011년 3597만원으로 14.2% 증가했으나 작년에는 3599만원으로 0%를 기록했다. 자산은 늘리고 부채를 줄인 것이다.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2011년 17.5%에서 지난해는 16.8%로 하락했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팀장은 “최근 2∼3년간 경기가 안 좋았고 가구 자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동산 경기 역시 주춤하면서 과거 소비에 긍정적인 요인들이 지금은 부정적인 요인으로 바뀐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임 팀장은 “투자 활성화와 그에 따른 고용 증가로 가계의 소득 증대와 소비지출 확대가 나타나도록 정부 정책을 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경기주체들의 소비심리 회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세종=박찬준·우상규 기자 sky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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