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따라 걷는 트레킹 코스 한낮에도 서늘 강원도 홍천군은 우리 땅의 시·군·구 중에서 면적이 가장 넓다. 서울시의 3배쯤 되고, 제주도와 비슷하다. 그리고 전체의 84%가 산지다. 워낙 땅이 넓고 높은 산이 많으니, 그 안에 담긴 자연풍경과 인간 삶의 모습도 각양각색이고 편차가 크다. 서울과 가까운 홍천의 서쪽은 여행지로 개발이 많이 됐고, 인공의 레저 시설도 많다. 반면 양양, 인제와 맞닿은 홍천의 동쪽에는 아직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자연이 남아 있다. 태백산맥 줄기가 흐르는 홍천의 동편은 우리 땅의 대표적인 오지로 꼽힌다.
홍천의 자연으로, 그리고 여행지로 빼놓을 수 없는 게 북한강 지류인 홍천강이다. 홍천 땅을 동에서 서로 관통하는 홍천강은 서석면 미약골에서 발원해 140여㎞를 흘러 청평호로 흘러든다. 그래서 홍천강 물줄기를 따라 가면 이질적인 풍경을 품고 있는 홍천의 동과 서를 모두 아우르는 여행을 할 수 있다.
홍천강 중·하류는 유역이 넓고 수심이 깊지 않아 예전부터 피서지로 인기가 많았다. 홍천강변의 명소로는 노일리와 팔봉리 등이 널리 알려졌으나, 이즈음에는 청평호와 인접한 서면 마곡리 배바위카누마을도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아직도 한적한 강촌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에는 홍천강변을 따라 걷는 멋진 트레킹길이 조성돼 있고, 강에서는 카누·카약을 즐길 수 있다.
마곡리 일대는 1970, 80년대 명사십리 마을로 불렸다. 강변에 펼쳐진 금빛 모래밭이 십리에 달할 정도로 넓고 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모래 채취로 강변에는 자갈만 남게 됐다.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잡혔던 물고기도 급격히 줄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강 중류의 팔봉리, 노일리, 굴지리 등에는 대형리조트와 수많은 펜션이 들어서며 사람들이 몰려 들었으나, 마곡리는 관심권 밖으로 밀려 있었다. 그러다 몇년 전 개통된 서울∼춘천고속도로가 부근을 지나가고 오토캠핑 열풍이 불며 다시 마곡리에도 강변의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수십년간 개발의 사각지대였던 이곳에는 아직도 조용하고 고즈넉한 강변 마을의 정취가 남아 있다. 전체 40가구 중 5가구가 물고기잡이를 생업으로 삼고 있을 정도다. 해질녘이면 조각배에 오른 어부가 천천히 그물을 드리우는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3년 전 ‘배바위카누마을’이라는 별칭을 붙인 홍천군 서면 마곡리 일대의 홍천강은 카누와 카약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이 마을에는 강을 내려다보며 숲길을 걷을 수 있는 근사한 트레킹 코스도 조성돼 있다. |
왕복 4㎞ 남짓한 배바위 트레킹길을 걸었다. 길은 입구인 모곡유원지에서만 잠깐 자갈밭을 지나고, 대부분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진다. 따가운 여름 햇볕을 나무들이 가려주고, 그 사이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니 이 길에서는 금세 더위를 잊게 된다. 우리 땅에서 한낮에 강변을 이렇게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길은 평탄해 천천히 걸어도 왕복하는 데 1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길이 끊어지는 곳에는 나무로 다리를 놓았고, 배바위가 내려다보이는 반환점에는 전망대도 설치할 정도로 트레킹 코스는 잘 정비돼 있다.
배바위까지는 카누로도 오갈 수 있다. 서울∼춘천고속도로가 개통되며 카누·카약 동호인들도 마곡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 일대 홍천강은 수량이 많으면서도 폭이 넓지 않고 유속이 빠르지 않아 카누 타기에 적당하다고 한다. 몇해 전부터 이곳에서 카누 캠핑대회가 열릴 정도다. 그래서 주민들도 카누를 이곳의 테마사업으로 삼기로 했고, 마을 이름도 ‘배바위카누마을’로 붙였다. 지난해에는 홍천군을 대표하는 농촌체험 휴양마을로 선정되기도 했다. 마곡리에 카누 마을이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이곳은 조선시대 강원도에서 벌채한 나무로 만든 뗏목이 지나가는 길목이어서 떼네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트레킹 길에서 내려다보니 강물 위에 작은 카누가 떠 있다. 양산을 드리운 연인들이 카누 위에 몸을 싣고 천천히 노를 젖고 있다. 이제 짙은 녹색이 완연한 숲과 푸른 강물, 그리고 조각배가 빚어내는 풍경이 더없이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다.
홍천=글·사진 박창억 danie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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