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교 지음/글항아리/3만8000원 |
7세기 내내 지속된 당나라와 고구려, 백제, 신라, 돌궐, 토번(티베트) 등의 전쟁은 유라시아 대전이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16세기 말 벌어진 임진왜란보다도 훨씬 큰 규모의 세계대전이었다는 것이다.
중원대 한국학과 서영교 교수는 신간 ‘고대 동아시아 세계대전’을 통해 고대사를 재해석한 연구결과를 내놨다. 서 교수가 논한 시대는 612부터 676년까지다. 고구려가 수나라 대군을 격파한 살수대첩부터 신라가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나당전쟁까지다. 지금의 한반도 강역과 아시아의 지정학적 형세가 사실상 이때 결정지어진 것으로 저자는 분석한다. 당시 신흥 제국 당나라와 돌궐, 몽골, 토번,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은 사활을 걸고 대결했다.
특히 신라가 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데는 김춘추·김유신의 뛰어난 전략도 한몫했지만, 당과 토번의 전쟁이 결정적이었다고 저자는 풀이한다. 670년 11만명의 당 정예부대가 대비천(大非川) 결전에서 토번군에 전멸당했다. 당시 당의 지휘관은 고구려 총독이었던 설인귀였다.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 주력군은 이듬해 한반도를 떠나 만주를 거쳐 서역으로 이동한다. 토번을 제압하기 위한 당나라의 표적 이동이었다. 당은 전쟁기계 같은 동돌궐의 기마병을 앞세워 북방 초원을 모두 정복했지만 토번에게는 대패했다. 신라는 이 틈을 타 당에 맞섰다. 당과의 결전에서 승리했고, 결국 한반도 전체를 차지했다.
저자는 당태종이 고구려 정벌에 실패한 이유와 증거도 제시했다. 토번과 몽골의 개입으로 당은 1·2차 고당 전쟁에서 대패했다는 것이다. 당태종은 640년 토번 국왕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 토번을 무마시켰다. 고구려와 결전을 대비한 후방 다지기였다. 토번 역시 당이 고구려와의 전쟁에 묶인 사이 토번 고원을 통일했다. 중요한 실크로드인 타클라마칸사막 남로의 전략 요충지들을 모조리 차지했다. 당태종이 안시성에 묶여 있던 645년 6∼9월, 연개소문에게 매수된 몽골의 설연타가 기마병 10만을 이끌고 당의 북부 수도권 하주를 공격했다. 설연타의 개입으로 당은 고구려에서 철수했다. 고구려가 안시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저자는 당시 진정한 승자는 안시성주 양만춘이 아니라 연개소문이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사마광의 자치통감 주석서인 ‘고이’(考異)의 기록 중에서 이런 내용을 찾아내 책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백제의 약화가 당 침략의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백제의 의자왕이 위암으로 추정되는 반위(反胃)로 긴 투병생활을 했으며, 이로 인한 백제 왕조의 통수권 약화는 뼈아팠다”고 밝혔다. 고대 전투의 승리는 말의 능력에 달렸다. 저자는 안정적인 전투용 말 공급과 운용 체계를 다루는 등 전쟁 기술도 촘촘히 엮어냈다.
저자는 고구려와 일본의 관계도 백제만큼 밀접했다는 자료를 제시했다. 지금까지 일본은 백제와의 외교관계만을 중요시했던 것으로 전해져왔다. 일본은 소가노 우마코 정권이 들어선 이후 고구려와 외교관계 수립에 집중한다. 고구려가 백제와는 또 다른 북방 문물 수입의 창구로서 일본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저자는 풀이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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