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일행(일반행정직) 남공무원, 셀프 소개팅합니다. 영화감상과 자전거 타기가 취미예요. 비댓(비밀댓글) 남겨주시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난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김모(30)씨는 최근 공무원시험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김씨는 “3년 전부터 온라인 카페를 들락거리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몇달 전부터 소개팅 글이 많이 올라오는 것을 봤다”며 “나도 막연히 같은 직종에 근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온 터라 이번에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셀프 소개팅’은 주선자 없이 남녀가 직접 연락처를 교환해 만남을 갖는 방식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익숙하고 자기 PR(홍보)에 당당한 요즘 젊은 층에게는 이미 익숙한 연애문화가 됐다. 과거에는 대학 커뮤니티나 각종 취업 전문 사이트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다가 최근에는 특정 직업군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끼리끼리 어울리기를 원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한 연애 스타일로, 주로 공무원이나 공사 직원, 약사·변리사·회계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늘었다.
김씨가 가입한 공무원 준비 커뮤니티는 현직 게시판에 셀프 소개팅 관련 글이 넘쳐나면서 지난 6월부터 전용 게시판을 별도로 마련했다. 교원임용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 파생된 교사끼리 만남을 주선하는 별도의 온라인 카페도 올해에만 10개 이상 우후죽순 격으로 개설됐다. 일부 커뮤니티는 운영자에게 공무원증이나 교원 임명장 등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인증 과정’을 통과해야 정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경기 수원의 한 중학교 교사인 강모(36)씨는 셀프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과 올겨울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이 여성도 강씨와 멀지 않은 지역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강씨는 “두 사람 다 같은 직군에 있으니 생활패턴도 비슷하고 직장에서의 고충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등 장점이 많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과거의 중매쟁이나 최근 결혼정보업체도 자신과 비슷한 조건의 상대를 만나려고 하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라며 “취업난이 심해지고 사회 진입 비용이 너무 높아진 상황에서 결혼을 원하는 젊은 층이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직업을 기준으로 한 ‘끼리끼리’ 문화가 사회통합에 장애가 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연애와 결혼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이루는 중요한 사회적 요소 중 하나”라며 “과거 양반과 천민으로 신분을 나눠 따로 결혼했던 것처럼, 직업으로 결혼상대를 제한하는 문화가 장기적으로는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과 통합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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