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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그거 사랑아니야’…성인남성 10명 중 8명 "데이트폭력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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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1 06:00:00 수정 : 2017-07-21 14: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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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히 모임에서 알게 된 한 남자. 여자에게 관심이 있다며 사귀자고 했다. 여자는 “지금 누굴 만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지만, 남자는 매일 같이 연락을 하고 ‘만나주지 않으면 죽겠다’고 까지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사귀게 된 지 세 달 째, 여자는 아무래도 이 관계를 이어갈 자신이 없어 “그만 만나자”고 이별을 고했다. 하지만, 남자의 휴대전화 번호로 며칠째 ‘정말 죽어버리겠다’는 연락이 온다.

#2. A(여)씨는 최근 남자친구 B씨와 다투던 중 뺨을 맞았다. 충격을 받은 A씨는 그대로 집에 돌아갔다. B씨는 그때부터 A씨에게 계속 전화를 걸고,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B씨에게 뺨을 맞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인 A씨는 화가 나는 동시에 혼란스럽다. B씨가 평소에는 주변에서 부러워할 만큼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애인’, ‘썸남’, 또는 ‘전남친’이나 ‘잘 아는 사람’의 이런 행동은 과연 ‘데이트 폭력’일까. 지난 18일 서울 한복판에서 만취한 20대 남성이 과거 연인관계였던 여성을 폭행하고, 말리는 행인을 향해 트럭을 몰고 돌진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애인, 부부 등 가까운 사이에서 벌어지는 ‘친밀한 폭력’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젠더폭력방지기본법’ 제정을 약속하며 가정·여성 등 젠더 폭력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가운데 데이트폭력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너 지금 어디야’…성인 남성 10명 중 8명 데이트폭력 가해 경험

국내 성인 남성 10명 중 8명은 적어도 1번 이상 데이트폭력을 한 적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인의 데이트폭력 가해연구’에 따르면 국내 19세 이상 64세 미만 남성 2000명 중 교제 중인 연인의 행동을 통제하거나 심리·정서적, 신체적 폭력, 성추행 등을 최소 1번이라도 한 경험이 있는 경우는 1593명으로 79.7%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누구와 함께 있는지 항상 확인하거나, ‘치마가 짧다’며 옷차림을 제한하고 특정 동아리, 모임을 나가지 못하게 하는 ‘통제 행동’을 한 경험이 71.7%로 가장 높았다. 이는 많은 남성이 이런 행동을 범죄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홍영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심리학 박사)은 “가해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통제행동’에 대해 피해자들은 이별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피해자가 가해자의 통제행동에 대해 수긍하지 않는 등의 태도를 보일 경우 더욱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또 “이는 한국사회에 가부장적 태도가 아직도 많은 남성에게 남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 허락 없이 가슴, 성기 등을 만지는 성추행(37.9%), 폭언이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심리·정서적 폭력(36.6%), 신체적 폭력(22.4%), 성폭력(17.5%)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사랑하는 연인이 ‘가해자’로 돌변하는 데에는 상대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소유물로 인식한 데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 상당수의 가해자는 ‘내가 너의 옷차림(화장 등)을 지적하는 것은 너를 사랑해서다’, ‘네가 (너의 행동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말로 책임을 쉽게 회피하기도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손문숙 활동가는 “데이트폭력의 절반 이상이 연애 초반 일상적으로 상대를 옭아매는 행동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며 “이런 관계가 지속하면 점차 욕을 하거나 때리고, 심지어 강간이나 살인에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도 사소하지 않은 폭력…‘사랑’이 될 수 없어

‘아내가 시댁에 가지 않아서’, ‘상추를 봉지 채 상에 놓아서’, ‘집에 늦게 들어와서….’

한국여성의전화가 2016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최소 82명, 살인미수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105명으로 나타났다. 피해여성의 자녀나 부모, 친구 등 주변인이 중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은 경우도 최소 51명에 달했다.

그러나 수사 기관으로 넘겨진 가해자들은 주로 ‘여자가 밤늦게 돌아다녀서 그랬다’는 등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랑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범죄를 미화하거나, ‘홧김에(술김에) 그랬다’며 사건을 축소하기도 한다.

가해자가 진술하는 범행동기 따른 피해자 현황을 보면 피해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의 재결합 및 만남 요구를 거부한 경우가 63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툼 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경우가 59명,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만났다고 의심했을 때가 22명의 순으로 나타났다. 폭력행위를 고소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일어난 경우도 7명이었다.

이는 폭력이 연인·부부 관계 등 내밀한 사이에서 벌어지고, 그 장소 역시 사적인 공간이 대부분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남편, 남자친구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이 벌이는 살해 사건은 대부분 피해 여성의 자택이나 근무지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경찰에 신고하기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데이트 폭력 경험 실태조사’에 따르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이유로 ‘피해가 심하지 않아서(38.1%)’, ‘별 도움이 안될 것 같아서(21.9%)’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또 보복 또는 위협 때문이라는 답변도 5.1%로 나타났다.

‘친밀한 폭력’에는 무단침입, 방화, 차량 충돌 등 다른 범죄도 동반된다. 피해자의 반려동물을 살해하는 사건도 두드러진다. 지난해 말 한 남성이 ‘햄스터도 죽고, 너도 죽자’며 전 여자친구가 키우던 토끼와 햄스터를 죽인 일이 대표적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취약한 동물을 상대로 벌어지는 이런 사건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나게 된다”고 질타했다. 이 관계자는 또 “데이트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부족은 피해자를 고립시키며 피해를 악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며 “데이트폭력 피해를 드러내고 대응하면 중단될 수 있다는 믿음과 실현이 가능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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