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이 지나도 정치권 현수막 그대로 '방치' / 붙일 때는 '치열' / 설치·제거 과정에서 조경수·가로수 '훼손' / 현수막 제거 비용은 결국 '혈세' / 붙이는 사람 따로, 떼는 사람 따로 / 시민들 '곱지 않은 싸늘한 시선'
"어떻게 변하지 않는지 원. 붙일 때는 며칠 전부터 달더니, 명절 끝나면 나 몰라라. 저거 다 뗀다고 세금 들고, 구청 직원들이 일일이 나와서 떼요."
설 연휴가 지난 7일 오후 한 지하철 입구 주변. 경쟁하듯 높이 매달린 현수막이 철거되지 않은 채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
명절 때가 되면 정치인들이 설치한 현수막으로 '몸살'을 앓는다. 도심뿐만 아니라 농어촌 명당자리에는 '설 인사' 정치인 현수막이 도배되다 싶이 한다. 그야말로 '현수막 공해' 다. 붙일 때는 치열한 '명당 경쟁'을 벌이다가 뗄 때는 '나 몰라라' 식으로 방치 하고 있다. 철거되지 않은 채 방치된 현수막이 도심 미관을 해치고 있다.
명절 때만 되면 시민들은 '현수막 피로'를 호소한다. 구청에 민원을 넣어도 그때만 잠깐, 돌아서면 또 붙어 있다. 그동안 행정기관이 민간 현수막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정치인들에게 유독 관대하다는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다. 정치인 현수막은 특권 의식의 산물이란 강한 비난을 받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7일과 8일 양일간 서울 곳곳을 둘러보았다. 설 연휴가 지났지만, 눈에 띄는 곳마다 정치권 현수막을 찾아볼 수 있었다. 경쟁하듯 높이 매달린 현수막이 여전히 철거 되지 않고 있었다. 일부 현수막은 바람에 찢긴 상태였다.
이동인구가 많은 한 지하철 입구 주변 전신주에는 빼곡히 게시된 현수막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빈틈없이 내걸린 탓에 교통사고까지 초래할 지경이다. 설치된 정치 현수막은 이미지 효과를 극대화 노려 야광 색 사용해 눈에 피로와 운전자들의 시선 분산을 시켜 교통사고 위험까지 주고 있었다.
한 주민은 "법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들이 앞장서고 있으니, 어이가 없죠"라며 "상가 간판보다 정치인 얼굴이 더 보는 판에 장사를 망치려고, 작정 한 거예요"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송파구 한 도롯가. 아파트 단지 앞 가로수 사이에 설치된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꼈다. 떨어질 경우 보행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연출 됐다. |
이날 송파구 한 도롯가. 아파트 단지 앞 가로수 사이에 게시된 현수막이 강한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노끈 한 줄에 묶여 있는 현수막이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떨어질 경우 보행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상황이 연출 됐다. 여기뿐만 아니었다. 송파구 곳곳에는 관리 되지 않은 채 방치된 현수막이 널려 있었다.
현수막을 살펴보았다. 현수막에는 명절 인사 문구보다는 자신의 정당과 직책이 크게 실려 있었다. 큼직 만한 자신의 얼굴 사진이 더욱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설치 과정에서 조경수가 훼손된 듯 보였다. '설 인사'를 빙자한 자신을 알리기 급급해 보였다.
인근 한 주민은 "민원 넣어야만 제거 한다"며 "신경 쓰는 자체가 싫다. 현수막이 눈에 띈다고 해서 일을 잘하는 것 아니다"라며 일침을 가했다.
명절 뒤엔 흉물이나 마찬가지인 현수막. 방치된 현수막은 결국 관할 구청이 제거 한다. 자신을 알리고자 정치인들이 설치한 현수막을 제거 비용은 결국 혈세를 들여 제거 한다.
현수막은 보통 6~10m가 된다. 가로수나 전신주에 높은 곳에 설치된 현수막들은 사람 키보다 길게 만든 특수 장비를 사용한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도롯가에서 어지럽게 묶인 노끈을 풀고 끊고 주변 상황을 고려해 짧은 시간 내에 신속하게 제거해야 안전하다.
제거 작업 자체도 위험하지만, 자칫 행인들 위로 현수막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높은 위치에 묶여 있는 노끈과 철사는 더욱 제거하기도 힘이 들뿐만 아니라 끊어내기도 쉽지 않다.
수거된 현수막은 구청에서 나무 지지대 분리작업까지 일일이 수작업을 거친다. 제거과정 모든 일이 사실상 구청 직원의 몫. 주민을 위해 일하고 예산도 아껴써야할 판에 자신을 뽑아달라며 너나없이 내건 현수막에 쓰이고 있다.
노끈이 사용된 현수막이 가로수에 설치돼 있다. 설치·제거 과정을 거치면서 흉측한 상처가 그대로 남는다. |
서울시 한 관계자는 "지정된 위치가 아니면 단속 대상이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라며 "설전부터 단속을 강하게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명당자리 가로수는 노끈과 철사로 몸살을 앓는다. 문제는 설치 과정에서 노끈이나 철사를 사용해 깊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 설치·제거 과정을 거치면서 흉측한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어 미관을 해친다. 결국 고사하면서 가로수 기능도 못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세금을 들여 다시 심어야 한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의하면 시와 구에서 지정한 현수막 거치대 이외에 설치된 현수막은 모두 불법이다. 정치인들이 내건 현수막도 현행법상 모두 불법인 것. 그럼에도 적극적인 단속은 어렵다. 정치권에 눈치에 지자체는 속앓이 하는 실정. 정치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선거 때도 그렇고, 나서서 떼지 못하고 있다"며 "제거해달라고 정당에게 요청은 하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정당에서 하는 일이라 현실적으로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