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야 3당이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안,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처리하려는 데 대해 이를 반대하는 자유한국당이 결사저지에 나서면서 ‘국회 선진화법’이 무색하게 ‘폭력국회’가 재연되고 있다. 내년 총선 공천과 당선에 목을 맨 현역 의원들의 ‘금배지 유지’ 욕심에다 재집권을 해야 하는 여권, 이를 저지해야 하는 한국당이 총선 후 대권까지 어떻게든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당리당략이 맞물린 결과다. 거대 양당인 민주당과 한국당이 국민과 민생은 안중에도 없이 고소·고발전을 벌이며 진흙탕 싸움을 마다않는 이유다.
이런 판에서 민주당과 한국당 만큼 주목받는 데가 바른미래당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은 정치권력의 왕좌를 두고 다퉈온 만큼 익숙한 풍경이지만 나름 ‘합리적 정당’임을 내세우며 거대 기득권 양당의 폐해를 극복하겠다던 바른미래당이 국회 파행을 부채질하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창당 때부터 색깔과 노선이 다른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인사들이 ‘한 지붕 두 가족’을 꾸려 기대와 우려를 안고 출범하더니 줄곧 우려만 키우다 풍비박산을 자초하는 모양새다.
특히 4·3보궐선거에서 굴욕적인 쓴맛을 본 이후 바른미래당은 많은 국민에게 ‘과연 정상적인 당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좌충우돌의 새 역사를 쓰는 모습이다.
◆그야말로 ‘잔인한 4월’ 맞은 바른미래당···‘콩가루 집안’ 꼴
4·3 보궐선거 다음날인 4일 바른미래당은 손학규 대표 퇴진론으로 당내 분란이 고조됐다. 하태경·이준석 최고위원 등 바른정당계 인사들은 보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도부 동반 사퇴론으로 손 대표 퇴진을 압박했으나 손 대표가 꿋꿋이 버티며 당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그러다 지난 18일 선거제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의결 여부를 논의하려 연 의원총회는 개최된 지 3시간 30분 만에 무위로 끝났다. 김관영 원내대표가 민주당과의 최종 합의사항을 의원들에게 전달하고 당의 추인을 받으려고 했으나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최종합의안’을 부인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어 23일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가 합의한 패스트트랙(선거제 개편안·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법안·검경수사권 조정안) 추인 여부 결정 의원총회에선 12대 11로 통과되면서 분당 위기가 가속화했다. 국민의당 쪽 중심 인사들은 민주당과 바른정당 쪽 인사들은 한국당과 주파수가 비슷한 인상을 줬다. 결국 손 대표 등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한국당 입당에 무게를 둬 온 이언주 의원은 탈당을 결행했다.
하지만 24일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인 오신환 의원이 ‘패스트트랙 반대표’ 입장을 밝히면서 당이 발칵 뒤집혔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이튿날 팩스로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사개특위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채이배·임재훈 의원으로 교체 신청(사보임)하는 강수를 두고 문 의장이 초유의 ‘병원 결제’를 하면서 당안팎의 파열음이 커졌다. 바른정당계와 한국당이 ‘원팀’이 돼 기습 사보임에 강력히 반발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사보임 꼼수’에 대한 당내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김 원내대표는 29일 논란 해소를 위해 4당 합의사항과 다른 독자적 공수처 법안을 민주당에 제안해 또 다른 논란을 자초했다. 권은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고위공직자의 범죄 행위 중에서도 부패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공수처가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만 행사하는 기소권에 대해서도 ‘기소심사위원회’를 별도로 둬 기소 문턱을 높인 게 특징이다.
◆당내외에서 “턱도 없다”
오신환 의원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권은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수처법은 공수처안에 기소심의위원회를 두는 것으로, 제가 갖고 있는 소신과 배치된다”며 “수사와 기소가 분리되지 않는, 기소권을 포함한 공수처를 만드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김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두분(오신환·권은희)과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4당 합의사항 외의 내용을 담아 바른미래당 공수처 법안을 별도로 발의하기로 했다”는 것과 배치된다. 오 의원은 현 사태에 대한 해결 방법은 ‘사보임 원상복귀’ 후 제대로 된 법안 통과를 위한 재논의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원내대표는 오·권 의원의 사개특위 원대복귀 가능성에 대해 “최종 의사결정을 통해 당의 입장이 정해졌고 당 결정을 이행해야할 책임이 원내대표에게 있다”며 “이행 과정에서 주어진 권한은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민주평화당도 바른미래당이 독자적으로 발의한 공수처 법안에 대해 “여야 4당의 합의를 깨는 것이고 패스트트랙 제도 입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평화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취지는 의원의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지만 특정 교섭단체가 반대해 안건 상정이 불가능할 경우 숙려 기간을 갖고 법안을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내용이 다른 복수 법안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되면 5분의 3이 넘는 의원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법안에 대해 동시에 찬성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지 패스트트랙 성사만을 위해 동일 사안에 대해 내용이 다른 두 법안이 동시 상정되는 억지 절차를 추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부득이 필요하다면 합의 정신에 맞춰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의 재논의를 거쳐 절충점을 찾아 하나의 안으로 발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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