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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 '브렉시트 속수무책' 후손들 어찌 볼까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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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4 10:07:42 수정 : 2019-05-24 10: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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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태어난 英 빅토리아 여왕 탄생 200주년 맞아 / 유능한 총리들 둔 덕분에 대영제국 최고 전성기 구가 / 캐나다·호주·인도·이집트…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완성 / 금슬 좋았던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외로운 노년 보내
빅토리아 여왕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영국은 국제사회에서 이렇게 불렸다. 오늘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놓고 지도자들이 ‘옥신각신’, ‘우왕좌왕’을 거듭해 유럽연합(EU)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결정장애’란 조롱까지 듣는 영국을 보면 격세지감이 드는 대목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은 19세기 영국이 아메리카 대륙의 캐나다, 태평양의 호주와 뉴질랜드, 아시아 대륙의 인도와 싱가포르, 아프리카 대륙의 이집트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유럽 대륙 스페인 남쪽의 지브롤터 등 세계 거의 전 지역에 걸쳐 식민지 또는 자치령을 보유한 점에 착안한 것이다.

 

영국이 워낙 광활한 제국을 거느리다 보니 비록 영국 본국은 한밤중이거나 새벽 시간이더라도 영국의 지배를 받는 지역들 중 어느 한 곳은 반드시 낮 시간대여서 해가 떠 있다는 뜻이다.

 

◆유능한 총리들 덕분에 대영제국 최고 전성기 구가

 

영국을 해가 지지 않은 나라로 끌어올린 빅토리아 여왕이 24일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그는 1819년 5월24일 당시 영국 국왕이었던 조지 3세의 넷째아들 켄트공 에드워드 왕자와 독일 하노버 왕가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불과 18살이던 1837년 보위에 오른 빅토리아 여왕은 무려 64년 동안 재위하고 20세기에 접어든 1901년 1월22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64년 재위 기록은 얼마 전까지 ‘최장수’였으나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67년 재위)에 의해 깨졌다.

 

최근 캐나다 왕립 조폐국이 발매한 빅토리아 여왕 탄생 200주년 기념주화. 젊은 날의 여왕을 묘사한 초상화 옆에 탄생 연도인 ‘1819’와 올해 ‘2019’가 나란히 새겨져 있다. 캐나다 왕립 조폐국 홈페이지

빅토리아 여왕이 통치한 기간은 영국사에서 ‘빅토리아 시대’로 불린다. 이 기간 영국은 러시아와의 크리미아 전쟁, 중국 청나라와의 아편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식민지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 반란도 무난히 진압했다.

 

안으로는 산업혁명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고 참정권 확대와 교육 보급 등을 통해 최고의 번영기를 구가했다. 해가 지지 않은 나라는 빅토리아 시대에 비로소 완성됐다.

 

자연히 빅토리아 여왕에 대한 영국 국민의 사랑과 존경심은 지금도 대단하다.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가 2012년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에 즈음해 실시한 가장 위대한 군주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35%)에 이은 2위(24%)를 차지했다.

 

영국에는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영국의 국왕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일 뿐 국사에 직접 관여하진 않는다. 정치와 행정은 총리, 그리고 내각의 몫이다. 이런 점에서 빅토리아 시대가 번영을 구가한 데에는 당대의 훌륭한 총리들 역할이 컸다.

 

보수당의 벤자민 디즈레일리(1804~1881)와 자유당의 윌리엄 글래드스톤(1809∼1898)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양당 체제의 의회 민주주의를 확립, 영국을 정치적으로 안정시켰다.

 

19세기 대영제국의 위용. 빨간색으로 표시된 곳이 영국 본국과 그 식민지 및 자치령이다.

◆금슬 좋은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외로운 노년 보내

 

빅토리아 여왕은 21살이던 1840년 사촌이자 독일계 귀족인 앨버트 공(1819~1861)과 결혼했다. 둘은 금슬이 좋아 슬하에 자녀 9명을 뒀다.

 

안타까운 것은 앨버트 공이 결혼 생활 21년 만인 1861년 12월 장티푸스로 급사한 점이다. 남편이 허무하게 갑자기 사망하자 빅토리아 여왕의 상심은 매우 컸다. 이후 그는 평생토록 검은 옷만 입고 지내며 앨버트 공의 죽음을 애도했다.

 

심지어 수도 런던을 비우고 교외의 윈저궁에 칩거하며 국사에서 거의 완전히 손을 뗀 채 생활했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 부부에겐 유명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신혼 시절 앨버트 공이 빅토리아 여왕과 부부싸움을 한 뒤 화가 나서 자신의 방문을 잠갔다. 여왕이 문을 두드리자 앨버트 공이 물었다.

 

“거기 누구요?”

 

“나는 영국 여왕이고 문을 열 것을 요구하오.”

 

아무 반응이 없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다시 부드럽게 문을 두드리며 “당신 아내요, 앨버트”라고 하자 비로소 문이 열렸다고 한다.

 

빅토리아 여왕 탄생 200주년을 맞아 영국과 세계의 영연방 국가들에선 기념행사가 한창이다. 영국 왕실 소유의 켄싱턴궁은 빅토리아 여왕이 입었던 옷과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인형, 당시 왕실의 부엌에서 사용한 집기 등을 일반에 공개하는 특별 기획전을 연다.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의 왕립 조폐국은 빅토리아 여왕 탄생 200주년을 기리는 기념주화를 발매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1867년 캐나다를 영국 식민지에서 자치령으로 승격시키고 오타와를 수도로 지정하는 등 캐나다와 인연이 깊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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