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소녀상’을 포함한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의 ‘표현의 부자유, 그 후’ 전(展)이 우익 진영의 테러 위협에 가까운 항의 등으로 인해 중단되면서, 예술 영역에 정치 논리가 작용했다는 현지 반발과 전시회에 참여한 한국 작가들의 강한 질타 등 거센 역풍에 시달리고 있다.
◆표현의 부자유 논한 전시회 중단…日 작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
현대 일본의 ‘표현 부자유’ 상황을 환기하고자 지난 1일 막을 올린 전시회는 실행위원장인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아이치(愛知)현 지사의 통보로 3일 중단됐다. 주최 측이 밝힌 중단 이유는 우익 성향 시민들의 테러 위협 등에 따른 ‘관람자의 안전 확보’였다. 전시회에는 일본 천황제, 오키나와 미군 기지 문제 등 일본 사회가 금기시하는 주제를 다룬 작품 17개가 출품됐으며, 테러 위협 등으로 간주되는 항의메일과 전화가 주최 측에 쇄도했다.
전시회 중단에는 정치 논리가 작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지난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시회) 보조금 교부 결정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 정밀히 조사한 뒤 적절히 대응하겠다”고 말했으며,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나고야(名古屋) 시장도 “행정의 입장을 뛰어넘은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는 항의문을 오무라 지사에게 보냈다. 자민당 극우 그룹 ‘일본의 존엄과 국익을 지키는 모임’은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관방부(副)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일부 전시는 표현의 자유를 내건 사실상의 정치 선전이므로 공금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서를 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어리석음’ 등을 표현한 작품을 내놓은 조형 작가 나카가키 가쓰히사(中垣克久·75)는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번 조치에 대해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는 테러 위협 등을 이유로 기획전이 중단된 데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고자 경찰이 있다”며, 소란을 피우면 어떤 전시회든 멈출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당국이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시인, 수필가, 소설가 등 1000여명이 가입한 일본 펜클럽도 3일 항의성명에서 “창작과 감상 사이에 의사를 소통하는 공간이 없으면 사회의 추진력인 자유의 기풍이 위축된다”며 전시회 지속을 주장했다.
◆韓 작가들도 한 목소리 규탄…“정치권 입김 작용한 것”
아이치 트리엔날레 초청으로 지난해부터 ‘평화의 소녀상’ 출품을 계획했던 김운성 작가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관람객이 볼 때는 평화의 소녀상이 반일(反日) 상징이 아닌, 평화의 상징으로 느낀다”며 “(일본) 정치권이 반일 상징으로 규정하다 보니, 예술에까지 들어와서 (전시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녀상 전시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짓밟는 일이라는 가와무라 나고야 시장의 발언, 예산 압박을 암시한 스가 관방장관 등으로 인해 극우 정치권이 움직였다고 지적했다.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는 김 작가는 “일본 극우가 평화의 소녀상을 반일 상징으로 이야기하는데, 평화를 상징하고자 만들었다는 점을 이해해주면 좋겠다”며 “극우를 향해 달려가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굉장히 위험한 사회(의 단면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 조명 사진을 출품한 안세홍 사진작가도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전시 재개를 위해 준비 중”이라며 “아직 작품은 (문이 닫힌) 전시장 안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최 측과) 충분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갑자기) 중단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며 “(일본) 정치권 입김이 굉장히 강하게 작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천황제 폐지’ 등을 주장하는 작품 등으로 일본 극우 정치권이 전시회를 불편해했기에 “인위적으로 핑계거리를 만들어 (전시를) 중지를 시키고 싶어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