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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우리은행, ‘라임 펀드’ 손실 날 줄 알면서도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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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11 23:00:00 수정 : 2020-03-12 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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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펀드 사태의 내막] 2019년 2월 내부 평가서 30% 손실 예상 / 이후에도 수천억원어치 펀드 계속 팔아 / 꼬리 무는 의문… 우리은행 출신 라임 회장 / 은행 도덕적 해이에 신뢰 멍들 수도

금융은 신뢰를 먹고 자란다. 하지만 우리 금융산업의 한 축을 이루는 우리은행은 그렇지 못했다.

 

대규모 투자자 피해를 낳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판매한 우리은행이 내부 평가에서 큰 손실이 난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펀드를 대량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달 27일 우리은행·대신증권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라임 펀드’ 부실 판매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환매 중단된 라임 펀드는 1조6000억원 규모로, 우리은행이 집중 판매한 라임 펀드는 가장 규모가 큰 ‘플루토’ 펀드다.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플루토 펀드의 손실률은 최대 50%로, 절반의 투자 자산이 증발했다.

 

금융감독원과 우리은행 내부 문건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해 1~4월 플루토 펀드 판매에 나서 2608억원의 투자 자금을 모집했다. 이 펀드는 ‘라임 플루토-FI’라는 이름으로, 35개 자(子)펀드 형태로 판매됐다.

 

우리은행이 플루토 펀드를 팔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이었다. 2월 들어 KB증권의 스트레스테스트를 참고한 백테스트 결과, 약 30%의 손실이 날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우리은행 본부는 이를 무시한 채 3월 들어 금융투자협회에서 프라이비트 뱅킹(PB) 직원을 상대로 “손실이 나지 않는 안전한 펀드 상품”이라며 판매를 독려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3, 4월 2개월 동안 대량 판매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부실판매 의혹을 받는 우리은행의 이 펀드 판매액은 신한금융투자를 포함한 4개 금융지주회사 계열사 판매액의 49%에 이른다. 라임자산운용의 수탁은행인 KEB하나은행의 판매액은 792억원에 지나지 않았다.

 

금융 관계자는 “손실이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왜 판매를 독려했는지 의문”이라며 “은행의 신뢰를 크게 추락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손실 예상한 우리은행의 내부 테스트

 

우리은행이 플루토 펀드에 대한 백테스트를 진행한 것은 지난해 2월이다. 이 펀드 판매를 시작한 지 한 달 뒤다. 결과는 그달 27일쯤 나왔다. 테스트 결과는 ‘약 30%의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팔지 말아야 할 펀드였던 것이다. 결과는 상부에 보고되고, 내부적으로도 일부 공유됐다고 한다.

 

정상적이라면 판매를 중단하거나 추가 테스트를 실시해 재검증해야 한다. 하지만 테스트 결과는 철저히 무시됐다. 고객의 피해를 막을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 버린 것이다. 은행 관계자는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은행이 왜 판매를 강행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외형 확대를 위한 공격적인 경영이 테스트 결과 무시로 이어졌다고도 한다. 그즈음 우리은행은 지주회사 전환 후 자산관리 후발주자로서 리테일(소매) 영업 강화에 나서고 있었다. 이를 위해 사모펀드 판매를 강화하기 위한 조직 개편에 나섰다. 금융자산 3억원 이상 고객 전담 점포를 만들고 투자상품개발팀을 보강했다. 사모펀드 영업으로 자산을 키우려는 전략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고위험 투자를 감수하는 금융투자사도 아닌데 은행에서 사모펀드를 공격적으로 판매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나온다.

 

라임자산운용과 특수 관계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도 한다. 라임자산운용의 원종준 대표는 2005년 우리은행에 입사해 증권운용부 계장으로 근무했다. 정치권 실세 개입설도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것은 현재로서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일 뿐이다.

 

◆의문투성이 PB 확정금리 교육

 

‘손실이 날 수 있다’는 테스트 결과가 나왔지만 다음 달인 3월에는 PB 직원을 상대로 플루토 펀드 판매 교육을 실시했다. 금융투자협회에서 이루어진 이 교육에는 주요 점포의 PB 직원들이 대부분 참석했다고 한다.

 

플루토 펀드 상품 교육을 주로 한 사람은 라임자산운용의 이모 상무였다. 그는 “플루토 펀드가 안전한 상품이며 손실이 안 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사실상의 확정 수익을 내는 펀드”라고도 했다.

 

이런 내용은 우리은행의 내부 직원용 ‘라임 플루토-FI 전문투자 사모펀드’ 설명서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설명서에는 ‘사모사채, 자산유동화(ABS) 등 안정적인 수익 확보가 가능한 자산에 투자(1년 수익률 연 9.0% 수준)’, ‘투자만기 자금 대상 시장변동성 없이 꾸준한 수익을 원하시는 고객’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에 라임자산운용이 산업은행에 건넨 제안서에도 ‘확정금리 6개월짜리 연 5%’로 되어 있었다.

 

PB 직원들은 이후 너나없이 “확정금리에 가까운 금리를 지급한다”며 상품 판매에 나섰다. 일부 고객 통장에 ‘확정금리 ○%’를 수기로 표시해 준 사례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라임자산운영은 이즈음 이미 손실이 나 멍든 라임 펀드 환매자금을 새로 모집하기 위해 ‘돌려 막기’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 본부조직이 상품의 안전성을 검증하지 못하면 PB 직원도 안전성을 판단하기 힘들다. 고객은 더욱 알 턱이 없다. 그런데도 우리은행 본부는 백테스트 결과를 무시한 채 안전한 상품인지 추가 점검조차 하지 않은 채 펀드를 사실상 확정금리 상품이라며 팔았던 것이다.

 

우리은행 PB 직원들은 억울해한다. 은행 본부조직이 불완전 판매를 주도한 뒤 라임 펀드 사태가 터지자 PB 직원들의 개인 잘못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과는 달리 대응한 은행들

 

금융감독원의 집계 결과 라임 펀드가 모집한 투자자금 총액은 1조6679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플루토 FI D-1호’(1조91억원)와 ‘플루토 TF-1호’(2438억원) 두 가지로 구성된 플루토 펀드는 1조2529억원에 이른다.

 

우리은행은 이들 펀드를 금융회사 중 가장 많이 팔았다. 플루토 FI D-1호는 35개 자펀드 형태로 2880억원, 플루토 TF-1호는 7개 자펀드 형태로 697억원을 판매했다. 두 펀드의 판매 총액은 3577억원. 부실 판매로 문제가 된 신한금융투자의 2542억원보다 훨씬 많다.

 

다른 은행은 우리은행과는 달랐다. 산업은행의 경우 라임자산운영의 ‘확정금리 연 5%’ 제안을 받고도 사실상 팔지 않았다. 플루토 FI D-1호만 37억원을 판매했을 뿐이다. KB국민은행은 아예 팔지 않았다. 라임자산운용의 수탁은행인 KEB하나은행은 두 펀드를 합쳐 864억원을 팔았지만 판매 제의를 받은 초기에 판매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은행 관계자는 “라임자산운영이 사실상 확정금리를 제시했는데도 이를 팔지 않은 것은 플루토 펀드의 투자 대상에 대해 라임 측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에 판매했지만 아차 싶어 판매를 중단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은 달랐다. 다른 관계자는 “해당 펀드의 이전 한 달 치 투자 내역만 제출받아 분석해 봐도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데, 왜 그런 검증조차 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내부의 리스크 관리 체제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거나 작동이 막힌 결과, 다른 은행이 판매를 중단한 부실 펀드를 4월말까지 팔았던 것이다.

 

◆‘A등급 투자’가 ‘C등급 투자’로 둔갑

 

라임자산운용은 플루토-FI D-1호 사모펀드를 팔면서 주로 A등급 채권을 비롯한 안전한 자산에 투자한다고 했다. 우리은행도 이를 근거로 ‘부동산·매출채권·1순위 수익권 등 담보로 신용 보강된 사모사채 및 ABS 투자’라고 PB 직원들에게 고지했다.

 

실상은 달랐다. 삼일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투기등급인 C등급 회사채가 50%에 달하고, 신용도가 높은 A등급 회사채는 불과 20%에 지나지 않았다. 투자한 부동산도 대부분 1순위로 담보 설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담보설정조차 하지 않은 투자 자산도 있었다. 라임자산운용이 거짓 제안서로 사기 판매를 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감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우리은행은 “플루토 펀드가 블라인드 펀드로, 자본시장법·신탁법으로도 은행이 간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은행은 책임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은행이 상품을 판매할 때에는 통상 투자 상품의 안전성을 사전 점검하지만 그런 점검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모펀드인 플루토 FI D-1호에 똑같이 투자된 자펀드인 플루토-FI와 톱(Top)-2의 경우 라임자산운용은 플루토-FI 1년짜리에는 위험도가 높은 1등급으로, 톱-2 6개월짜리에는 위험도가 낮은 4등급으로 매겼다고 한다. 다른 자펀드로 모집한 돈을 똑같은 모펀드에 투자하면서도 자펀드의 위험도를 다르게 평가한 것으로, 은행은 당연히 의심할 만하다. 하지만 사후 점검은 없었다. 그 자체로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객의 투자 성향을 임의로 바꾼 것이 PB 의 일선 직원들이 아니라는 사실도 의문을 남는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검찰 조사에서 가려야 할 부분이다.

 

◆금융감독원은 뭘 했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투자의 철칙이다. 이 원칙은 금융감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은행의 방카슈랑스 감독규정만 봐도 그렇다. 가령 보험 자산의 경우 특정 분야에 투자하는 자산 비중이 25%를 넘지 못하도록 한다. 자칫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경우 파산을 부르고, 금융 안정성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은 비이자 수익 확대를 위해 사모펀드 판매 경쟁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사모펀드에는 그런 감독규정은 없다. 그 결과 대규모 피해를 낳는 금융사고는 시도 때도 없이 터진다. 지난해 8월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도, 이번 라임 펀드 사태도 모두 그로부터 비롯된다.

 

금감원은 최근 수년간 사모펀드 문턱을 낮췄다. 가입 금액을 10억원에서 점점 내려 1억원까지로 낮췄다. 그럼에도 금융회사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고, 자산 운용의 안정성을 도모할 장치는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산운용사는 사모펀드를 마구잡이로 모집하고, 은행은 불물 가리지 않은 판매에 나서고 있다. 사고가 터지면 안정적인 수익을 바라며 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에게만 책임을 떠넘긴다. 라임 펀드 사태도 따지고 보면 그 결과다.

 

일각에서는 “펀드 투자를 하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런 식이라면 펀드 투자를 기반으로 국제금융시장의 큰손이 된 구미의 대형 투자은행(IB)과 같은 금융회사의 등장은 바라기 힘들다. 금융 전문가들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변방의 금융 낙후국으로 머물고 있다”고 했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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