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사별은 사람이 평생 겪는 다양한 상실의 경험 가운데에서도 가장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 중 하나다. 이렇게 생긴 스트레스는 마음의 고통뿐만 아니라 우울증, 심혈관질환(뇌졸중, 심근경색), 치매 등의 위험을 높인다는 게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이 중에서도 치매는 배우자 사별을 경험한 노인에게서 유독 그 위험이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국내외 15편의 논문을 대상으로 한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배우자 사별을 경험한 노인들은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3∼15년 동안 치매에 걸릴 위험이 평균 20%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배우자 사별에 따른 치매 위험이 왜 이처럼 커지는지에 대해서는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의 축적 등 여러 가설만 있었을 뿐 뇌에 어떤 병리적인 변화가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국내 연구팀이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연구 결과를 처음으로 내놨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영 교수와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김지욱 교수 공동 연구팀은 결혼 경험이 있는 노인 319명(61∼90세)을 대상으로 포괄적인 임상 평가와 뇌 영상 분석을 통해 배우자 사별에 따른 대뇌 병리 변화가 치매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연관성을 확인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정신의학 및 임상 신경과학’(Psychiatry and Clinical Neuroscience) 최신호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전체 연구 참여자 중 연령, 성별 등의 비율에 따라 128명을 뽑아 배우자 사별군(59명)과 대조군(59명)으로 나눠 뇌 위축 및 혈관성 변화를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촬영(MRI)과 양전자단층촬영(PET) 검사를 시행했다. 이 결과 배우자 사별군에서 그렇지 않은 군에 견줘 ‘뇌 백질 변성’(WMH)의 유의한 증가가 관찰됐다.
뇌 백질은 MRI 영상에서 뇌 중심부 옆으로 하얗게 보이는 부분을 말하는데, 이 백질에 퍼져 있는 작은 혈관들이 손상된 생태를 뇌 백질 변성이라고 한다. 변성이 클수록 치매와 뇌졸중 발병 위험이 커지는 것으로 본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런 뇌 백질 변성이 고령에 사별을 겪은 경우 더욱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치매와 관련된 인지기능 저하 현상도 배우자 사별군의 특징이었다.
연구팀은 “배우자 사별 이후의 충격과 스트레스가 뇌 백질 변성으로 이어지면서 인지기능 저하와 치매로 악화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자 사별은 치매의 원인 질환인 알츠하이머병과 연관된 베타 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의 침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동영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에서 자주 관찰되는 치매 및 인지기능 저하의 예방을 위해 혈관성 대뇌 백질 손상을 줄이려는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교수는 “사별 경험을 제외한 혈관성 뇌 손상의 대표적인 위험요인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비만, 흡연 등이므로 이런 요인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한 노력이 사별 경험과 연관된 치매 발병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공공의료 차원에서도 배우자와 사별한 노인에 대해서는 치매 발병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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