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일상과 동떨어진 장소 안돼”
美 ‘9·11 메모리얼 뮤지엄’ 모범사례
‘다크 투어리즘’으로 명소 자리매김
2011년 3월 일본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히는 동일본 대지진 앞에서 많은 사람의 생사가 엇갈렸다. 사망자만 1만5899명(일본 경찰청·2020년 3월1일 기준). 특히 높이 15m의 초대형 쓰나미가 덮친 가운데 전원 공급 중단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면서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에서 사망자의 99.6%가 발생했다. 대재난 이후 해당 지역 일본인들은 희생자를 추모하고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며 새로운 희망을 일궜다. 특히 희생을 어루만지며 피해 최소화와 관련한 경험과 지식을 배우게 하는 다크 투어리즘의 장소로 재해 지역을 탈바꿈시켰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재난·재해 현장을 둘러보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을 뜻한다. 미국 9·11 테러 현장인 ‘그라운드 제로’ 등이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사이에 있는 ‘9·11 메모리얼 뮤지엄’이 주요 사례로 꼽힌다. 각각 독일 베를린과 미국 뉴욕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도심 내 혐오시설이 아닌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과 시민들을 위로할 수 있는 추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세월호 참사의 추모공간이 아직 첫 삽도 못 뜬 상황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6일 4·16재단 등에 따르면 내년 4월 경기 안산시에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4·16생명안전공원’이 착공될 예정이다.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2014년 4월16일 참사 발생 10년 만에 추모공간 건립이 본격화하는 셈이다. 세월호 참사는 희생자 대다수가 안산 단원고 출신이다. 장례식도 안산과 군포, 시흥 등 근거리에서 이뤄졌지만 아직도 제대로 된 추모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김익한 명지대 명예교수(기록관리학)는 “추모공간이 외진 곳에 설치되면 유가족 등 참사 당사자만 추모일과 관련된 기념일이나 명절에 찾게 된다”며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나 뉴욕 ‘9·11 메모리얼 뮤지엄’처럼 매일 시민이 지나치는 곳이나 휴식·일상의 공간에서 참사의 기억을 환기할 수 있어야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민환 한신대 교수(사회학)도 역시 “추모공간을 만드는 이유는 유사 사건 발생을 방지하도록 기억하자는 것”이라며 외딴곳에 건립하기를 경계했다. 김 교수는 “삼풍백화점 위령탑이 사고현장이 아닌 한참 떨어진 곳에 있어 사고 몇 주기에만 언급된다”며 “참사를 기억하기보다 ‘평상시에 잊다가 딱 그날만 기억하는 일’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일상 속에 추모공간을 가져본 적이 없고 추모는 현재의 삶과 분리된 것으로만 얘기해서 사람들이 밥을 사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추모공간을 상상하지 못할 뿐”이라며 “이태원역 1번 출구에 모인 메모 보관이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추모공간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다영 국가트라우마센터 담당관도 “‘우리가 희생자를 기억하고 있다’ ‘앞으로 이런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가 지켜보겠다’는 의미를 담은 추모는 희생자를 기리는 효과뿐만 아니라 생존자를 위로하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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