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고 아이 비극 속 의견 첨예
“아이 살리겠다는 것 처벌 과해”
SNS서 7000건 이상 공유 ‘공감’
전문가들은…
“아동의 부모 알권리 침해 제도”
“영아유기 맞아…처벌 대신 지원을”
경찰이 ‘출생 미신고 영아’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는 가운데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온 사례를 처벌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결국 “베이비박스도 영아유기”라는 강경한 입장이 있는 반면 “아이를 양육할 수 없는 여성에게 베이비박스 외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반박도 있다.
서울경찰청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달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서에 수사의뢰 등 통보된 사건은 총 216건”이라고 밝혔다. 수사 대상에는 병원 밖에서 출산해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온 경우도 포함됐다.
경찰청은 지난 10일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놓고 왔다’고 진술하는 사례가 대부분이고 일일이 확인하느라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며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놓았을 때 부모가 처해 있던 경제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에 따르면 지난해 6월까지 최근 12년 동안 총 1990명의 아이가 베이비박스에 담겨 신고됐다. 연간 150~180명 수준이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두고 가는 경우 ‘영아유기죄’가 적용돼 2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베이비박스 기관과 상담을 거친 뒤 아이를 인계했다면 영아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례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7월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장소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 맡긴 사실이 인정된다’며 20대 여성에게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맡긴 부모를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넣고 가는 것도 처벌 대상이고, 낙태도 안 되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에게 남은 선택지는 몰래 출산한 후 영아를 살해하는 것뿐”이라는 글이 올라와 9000회 이상 공유될 정도의 공감을 얻었다.
“출생기록만 있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많은 아동이 준비되지 않은 부모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전수조사를 했고, 그 과정에서 그나마 아이를 살리겠다고 베이비박스에 두고 간 엄마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라는 SNS 게시글도 7000여회 공유됐다.
베이비박스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분분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허 입법조사관은 “베이비박스는 부모가 아동을 놓고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아동 입장에서는 자신의 태생을 전혀 알 수 없게 된다”며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한국에 베이비박스를 폐쇄하고 국가가 개입해 부모를 설득할 수 있는 ‘익명출산제’(보호출산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베이비박스가 넓게 보면 ‘영아유기’이지만 형사처벌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선희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위원회)는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익명으로 아이를 버리게 하는 베이비박스 제도 자체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변호사는 “베이비박스 유기를 처벌한다고 아기나 엄마가 보호되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회적 비용을 들이지 않은 채 개인만 처벌하고 비난하기보다, 엄마가 임신 초반부터 아이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게 지원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비박스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베이비박스를 처벌하면, 여성은 아이를 길에 버리거나 살해할 수밖에 없다”며 “명백한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승 연구원은 “미국도 과거 ‘베이비박스가 영아유기를 조장한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베이비박스가 아이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전한 영아 피난처법’을 시행해 24시간 영업하는 공공기관에서 베이비박스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다”며 베이비박스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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