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납치 신고했는데 출동 안 해” 손배소송
경찰측 “장난전화인줄…무단횡단이 사망 원인”
다툼 중 만취 상태로 고속도로에 뛰어드는 여자친구를 막지 못해 차에 치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여성 유족이 “납치 신고를 받고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 측은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횡단하던 중 사망한 30대 여성 A씨의 유족이 최근 국가를 상대로 3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경찰의 112 신고 묵살이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A씨는 2022년 11월18일 오전 2시21분쯤 광주 광산구 호남고속도로 비아버스정류장 부근에 정차한 차량에서 내려 남자친구 B씨와 다투다 고속도로를 지나던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112에 납치 신고를 하고 택시를 잡아타려던 A씨를 가도록 두지 않은 B씨는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 재판부는 “막무가내인 A씨의 위험 행동을 막아서거나 제지한 것으로,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키는 등 의무가 있지는 않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 유족은 사고 전 “납치당하고 있다”며 A씨가 신고했는데도 경찰이 출동하지 않은 부분을 문제 삼았다. 경찰의 부실 대응 의혹은 B씨의 1심 재판 과정에서 뒤늦게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B씨의 판결문에는 A씨가 사고 당일 휴대전화로 112에 전화해 “차량 조수석에 납치돼 가고 있다. 출동해 주실 수 있냐”며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담겼다.
앞서 사고 당일 술을 마신 A씨는 자정 무렵 B씨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가 B씨가 자신의 전 남자친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로 인해 다툼을 벌였다. 말다툼 도중 B씨는 “전 남친에게 직접 사과하러 가겠다”며 제멋대로 차량을 몰아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이때 A씨가 “납치됐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B씨가 거세게 만류하는 등 다툼이 커졌다. 당시 B씨는 신고 전화 너머로 “안 오셔도 돼요. 저 여자 술에 취해서”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 경찰은 해당 신고를 ‘비출동 종결 대상’으로 판단, 현장 출동 없이 종결 처리했다. 다급해진 A씨가 시동을 끄려 하자 B씨는 고속도로 갓길에 차량을 세웠다. 이후에도 자리를 피하려는 A씨와 이를 만류하는 B씨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고 서로 뺨까지 때렸다. A씨는 고속도로 위에서 달리던 택시에 “살려달라. 맞았으니까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도움을 청했고, 이때도 B씨는 “아무 일도 아니니까 그냥 가라” 등 저지를 이어갔다.
당시 승객을 태우고 있던 택시기사가 대신 112에 신고했지만, 문제는 약 10분 뒤 발생했다. A씨가 다가오는 B씨를 피해 도망가며 다른 차량에도 도움을 요청하려던 순간, 한 승용차가 A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치면서 사망 사고로 이어졌다. 택시기사 신고를 받은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건 사고가 발생한 이후였다.
직무 유기 소지가 있다는 유족 주장에 경찰 측은 “첫 신고 당시 허위·오인 신고로 판단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광주경찰청 관계자는 세계일보에 “이 사건은 둘이 다투다 무단횡단한 게 사망 원인으로, 첫 신고 시점과 사고 시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2시간 가까이 차이가 난다”며 “첫 신고 때 장난 전화로 판단해 출동 지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