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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가 건져낸 ‘태안선 보물’ 서울에서 만난다

입력 : 2024-03-25 21:06:25 수정 : 2024-03-25 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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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박물관, 5월19일까지 기획전

두꺼비 벼루·사자 향로·청자 매병…
태안군 대섬·마도 해역에서 나온
청자·백제토기·기와 등 83점 전시
수중 유산은 과거에서 온 타임캡슐
개흙, 침몰선 보호… 보존상태 좋아
“옛사람들의 항해 상상하며 관람”

2007년 한 어민이 충남 태안군 대섬 앞바다에서 푸른 접시를 안은 주꾸미를 건져 올렸다. 맨눈으로 봐도 예사롭지 않은 접시였다. 바로 수중조사가 시작됐다. 바닷속에서 잠자던 고려시대 선박 ‘태안선’은 이런 우연을 통해 수백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당시 발굴된 향로, 벼루 등 귀한 해양유물들이 서울 나들이를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한성백제박물관이 5월19일까지 여는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전시를 통해서다. 전시는 서울 송파구 한성백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태안군 대섬과 마도 해역에서 수중 발굴한 유물 가운데 보물로 지정된 12∼13세기 고려청자 7점을 포함해 총 83점을 선보인다. 태안선과 마도 1·2·4호선의 대표 유물, 마도 해역에서 발굴한 백제시대 토기·기와를 한데 모았다.

바닷속 태안선에서 발견된 고려청자인 두꺼비 모양 벼루와 사자 모양 향로, 마도 2호선에서 발견된 고려청자인 푸른 매병이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 전시를 통해 서울 나들이를 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바다의 경주’ 태안

이번에 전시하는 수중유물은 모두 태안 앞바다에서 올라왔다. 태안 앞바다는 ‘바닷속 경주’로 불릴 정도로 수중 유물이 풍부하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많은 배들이 변고를 당한 지역이다.

이곳은 과거 사신선과 무역선, 세곡선이 항해 중 머물던 곳으로 서해상의 중요 항로였다. 그러나 일년 내내 끼는 안개, 복잡한 해저 지형, 급속한 조류 흐름, 수중 암초 등으로 지나기 어려워 예부터 ‘난행량(지나기 어려운 길목)’으로 불렸다. 옛사람들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편안하고 번성하라는 뜻의 ‘안흥량’으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태안 앞바다에서는 지금까지 5척의 난파선이 발굴됐다. 2007년 태안선, 2009년부터는 고려시대 배인 마도 1∼3호선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조선시대 배인 마도 4호선도 찾아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태안 인근에서 선박이 난파한 기록이 자주 등장하나, 2015년 마도 4호선을 발견하기 전까지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다.

마도해역 출수 백제토기- 심발형토기 동체편.

2007년 태안선의 발견은 서해 중부해역이 국내 수중발굴의 새 중심지로 떠오른 계기가 됐다. 이전까지는 1976년 신안선이 발견된 서남부해역에서 수중발굴이 주로 이뤄졌다.

수중 문화유산은 ‘과거에서 온 타임캡슐’로 불린다. 미생물이 적어 유적과 유물이 비교적 오래 보존되기 때문이다. 특히 서해는 갯벌의 부드러운 개흙이 침몰선을 보호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흙은 바다생물의 침투를 막고 진공포장처럼 유물을 감싼다. 이 때문에 개흙에 묻힌 유물을 발굴할 때는 흙을 파내지 않고 진공 흡입 펌프로 물과 흙을 그대로 빨아들인다. 수중 문화유산이 보존 상태가 좋은 또하나의 이유는 만들자마자 진상·조공·판매를 위해 배에 실어 사용 흔적이 없어서다.

태안선과 마도 2호선에서 발견된 일곱 점의 고려청자는 희귀성, 조형미, 용도 등 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유산인 보물로 지정됐다.

마도해역 출수 백제토기- 심발형토기 구연부편.

◆두꺼비 벼루·사자 향로 등 전시

이번 ‘바닷길에서 찾은 보물전’에서는 태안선과 마도 1·2·4호선의 대표 유물, 이 유물들이 발견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함께 소개한다.

꼭 봐야 할 유물로는 태안선에서 나온 두꺼비 모양 벼루와 사자 모양 향로가 있다. 태안선에는 2만5000점의 청자가 실려 있었다. 우리나라 수중문화유산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 양이다. 이 중 조형미가 뛰어난 유물이 이 벼루와 향로다.

‘청자 철화 퇴화 점무늬 두꺼비 모양 벼루’는 두꺼비가 고개를 위로 들고 손과 발을 웅크린 모습이다. 12세기 고려시대에 만들어졌으며 크기가 작아 휴대용으로 추정된다. 함께 나온 목간 덕분에 제작시기, 제작지, 소비처가 밝혀진 기물이라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됐다.

‘청자 사자모양 향로’는 태안선에서 한 쌍이 나왔다. 처음엔 몸통 2점에 뚜껑 1점을 발굴했는데, 후에 잠수사가 유물 19점을 도굴했음이 밝혀졌다. 이 도굴품에 향로 뚜껑 1점이 포함돼 있었다. 서로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이 향로는 세 발이 달린 향로 위에 사자가 얹힌 원형 뚜껑을 덮은 형태다. 연구소 측은 “몸통의 둘레와 맞먹는 큰 머리, 날카로운 이빨, 매섭게 응시하는 눈은 모두 도공이 직접 빚고 깎아 만든 것”이라며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국보 청자인 사자모양 향로와 달리 독특한 해학미를 품고 있다”고 소개했다.

2010년 마도 2호선에서 나온 고려청자 140여점 중 하나인 청자 매병 두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청자 상감 국화 모란 버드나무 갈대 대나무무늬 매병’은 짧고 간결한 아가리와 풍만하고 당당하게 벌어진 넓은 어깨, 아래로 이어지는 우아한 선이 전성기 고려청자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죽찰(대나무 조각 위에 글씨를 쓴 것)에는 술이 아닌 참기름과 꿀을 담아 정8품 이하의 무관에게 올리는 매병이라고 쓰여 있다.

마도해역 출수 백제토기- 심발형토기 저부편.

태안선에서 발견한 참외 모양 주전자, 마도 인근 해역에서 찾은 국화무늬 접시와 꽃 모양 사발 등도 전시에서 공개된다.

전시에 나온 백제 유물도 의미 깊다. 최근 마도 해역에서는 시굴조사 과정에서 백제의 것으로 추정되는 기와 조각 10점과 깊은 바리(밥그릇) 조각 3점을 찾았다. 기와는 지붕의 고랑이 되도록 젖혀 놓는 암키와만 확인됐다. 형태나 제작기법이 웅진·사비기보다 백제 한성기의 기와와 유사하다. 이 유물들은 배의 파편이나 출처를 알 만한 증거 없이 발견돼 바다 속에 남겨진 경위는 알 수 없다.

연구소 측은 “이번 전시를 통해 옛사람들이 진귀한 물건을 가득 채운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한성과 벽란도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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