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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한림대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바람에 웃고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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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0-15 11:00:56 수정 : 2009-10-15 1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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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風, 외세침략은 막아줬지만… 이웃에 잊혀진 '고독한 섬'이 돼
◇개장(開場)한 지 얼마 안 되는 어느 돈가스 집 앞. 똑 같은 깃발을 무려 7개나 내걸며 손님들의 이목을 끌어보려 애쓰고 있다. 역시, 바람 많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바람아, 멈추어다오’

1980년대 말은 전국을 열풍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가수 ‘이지연’의 시대였다.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로 혜성같이 등장해 빼어난 미모와 가창력을 선보였던 그녀는 당시 모든 한국 남성들의 우상이자 여신이었다. 그런 그녀가 무명의 기타리스트와 결혼하며 우리 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선사했던 노래가 ‘바람아 멈추어다오’였다.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다. 가수 이지연으로 글머리를 연 이유는 오늘의 주제가 바람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의 왼쪽 끝자락에 위치한 데다 계절풍인 몬순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온갖 바람이 건드리고 지나가는 나라가 일본이다. 사시사철은 물론 밤낮도 가리지 않고 불어닥치기에 열도의 진정한 지배자는 태양이 아닌 바람이라는 것이 필자의 B급 견해이기도 하고. 오죽 바람이 많았으면 바람을 부르는 이름만도 계절에 따라 50가지가 넘고, 지역에 따라서는 그 명칭이 무려 2000개에 달할까? 그래서, 날씨를 통해 바람을 예측하는 구전(口傳)도 예로부터 부지기수였다. 예를 들어 “아침 해가 옅은 청색이면 큰 바람이 일고, 노란색을 띠면 폭풍우가 오며, 일출에 노란 구름이 걸치면 북풍이 강하게 온다”는 식으로.

사실, 일본에 바람이 많다는 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조선 초 수차례의 방문을 통해 누구보다 일본 사정에 정통했던 신숙주는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라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마침 일본 국왕에게 통신사를 보내려 했으나 비바람이 심하고 먼 곳이어서 일본에서 사신으로 온 여러 추장들 중에서 사신을 삼고자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1984)라는 일본 애니메이션 속 배경도 실은 일본을 상징하는 무대장치에 속한다. 우리에게는 ‘미래소년 코난’과 ‘이웃집 토토로’로 더욱 잘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인 영화에서는 풍력을 에너지원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바람 계곡 주민들의 투쟁기를 그리고 있다.

◇‘고이노보리’ 축제에 등장하는 잉어 모양의 깃발. 바람 많은 일본에는 적격인 깃발로, 잉어의 입을 통해 들어간 바람이 꼬리로 나오도록 고안됐다. ‘고이노보리’란 남자 어린이들의 입신양명(立身揚名)과 건강을 빌기 위해 해마다 5월 5일에 치러지는 전통 축제이다.
애니메이션 속의 바람 계곡 주민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악당들과 싸우는 동안, 현실 속의 일본 주부들은 바람으로부터 빨래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바람이 많다 보니 빨래 말리기에는 제격이지만 강한 바람에 조심하지 않으면 빨래를 잃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해서, 일본의 빨래집게는 한번 물면 좀처럼 사냥감을 놔주지 않는 강한 악력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샹들리에’로 즐겨 부르는 빨래집게는 대규모의 빨래널이를 위해 고안된 제품으로 20∼30개의 빨래집게들이 하나의 고리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런 샹들리에 빨래집게들은 바람 부는 날이면 아파트 베란다에서 수십, 수백 개씩 소리 없는 군무(群舞)를 연출하곤 한다.

돌이켜 보면, 지리적으로 비바람이 심할 수밖에 없었던 일본은 그 명(明)과 암(暗)을 동시해 맛봐야만 했다. 밝은 면을 거론하자면 거친 비바람 속에 외세가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기에 안정적이고 독창적인 문화 발전이 가능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어느 학자에 따르면, 한반도는 유사 이래 1000번 이상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는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전까지는 외세의 침입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이 때문에, 인류 역사상 최대 강국이었던 몽골이 두 차례에 걸쳐 고려 연합군과 열도 침공을 시도했을 때에도 풍전등화 속의 일본을 지켜준 것은 훗날 ‘신의 바람(가미카제)’으로 명명된 태풍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2차 세계대전 말기, 기울어가는 전세를 뒤집기 위해 가미카제 특공대를 편성해 미 항공모함의 사령탑에 달려들던 제로기들도 ‘신의 바람’을 다시 한번 일으켜 보겠다는 군국주의자들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자면 이웃 국가들로부터 잊혀진 채 철저하게 ‘나 홀로’ 섬에 남게 했던 원인 제공자 역시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바람이었다. 이러한 자연환경이 섬나라인 일본을 더욱 독특하게 진화시키는 데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일본을 주변국들로부터 떼어 놓았던 신풍(神風)은 또 두고두고 후손들의 희생을 야기하며 오늘날까지 열도에서의 삶을 고단하게 하고 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의 다카다노바바 지하철 역전(驛前) 모습.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망가진 우산들이 역 앞에 버려진 채 쓰레기와 함께 쌓여 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조사해 보니 한 해에 동남아시아의 태평양 상공에서 발생하는 태풍 수는 평균 27개 정도. 이 가운데 3개 정도가 일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본토 인근(300㎞ 이내)까지 접근해 오는 태풍을 포함할 경우에는 매년 15개 정도의 태풍이 일본을 지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여름엔 사흘에 한 번꼴로 큰 바람이 불어닥치곤 한다. 이와 함께 수시로 찾아오는 바람 또한 하늘의 상황을 시시각각 바꿔놓는다. 아침에는 화창했던 하늘이 점심엔 돌연 시커멓게 되고, 저녁에는 천둥·번개가 쳐도 이상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 바람에 자주 고뿔이 들어서였을까? 일본에서는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바람에게 덜미를 잡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감기를 일으킨 바람이 신풍과 동격일 수는 없어 사악한 바람(邪風)으로 표기될 따름이다. 열도를 괴롭히는 바람은 비와 만나 ‘비바람’이 될 경우 ‘고생’과 ‘가난’을 의미하는 단어로 통용되기도 한다.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은 산사태와 홍수, 전염병과 이재민 등 온갖 재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수천 년 동안 반복돼 온 자연의 위력 앞에 섬나라 사람들은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으리라. 더불어 태풍 뒤의 재해 복구를 위한 협동은 지속적인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었을 터. 해서, 생사가 걸린 상황을 자주 맞닥뜨려야 했던 입장에서 마을에 도움이 안 되는 주민은 예로부터 ‘이지메’와 ‘무라하치부’(마을의 공동 작업에 태만한 자 등에게 가해진 집단 응징. 수해가 발생해도 일절 거들어주지 않았음)라는 따돌림으로 다스려온 것이 일본의 슬픈 역사 중 하나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런 의미에서 거친 비바람 역시 애니미즘과 결부된 일본인들의 신토 사상을 종교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장본인이었다.

다행히 근래 들어 신풍과 사풍을 모두 청정 자원으로 활용해 보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바람의 변덕이 몹시 심하기에 안정성이 떨어져 송전시설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시쳇말로 얘기하자면 좀처럼 ‘도움이 되지 않는’ 바람인 셈이다.

그래도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혹독한 자연 환경은 일본인으로 하여금 역대 어느 국가보다 비바람과 태풍, 홍수와 산사태에 강한 국가를 만드는 데 톡톡히 일조했다. 그래서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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