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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 지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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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1-11 22:11:42 수정 : 2009-11-11 22: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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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아버지’와 함께 가장 두려운 대상
“아무 경고도 없이 서 있는 곳이 구토를 느낄 것 같은 롤러코스터로 변해 버렸다. 하지만, 가장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귀를 찢을 듯한 굉음이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소리······.” 땅이 50cm 가량 솟구치며 옆으로 1m를 움직였던 리히터 규모 7.2의 청천벽력(靑天霹靂). 20초에 불과했지만, 6000명 이상이 죽어간 1995년의 고베 지진 당시, 어느 생존자가 남긴 체험담이다. 규모 1짜리까지 포함하면 1년에 무려 1500여회의 지진이 일어나는 나라. 예로부터 ‘벼락’ ‘화재’ ‘아버지’와 함께 가장 두려운 대상으로 꼽혀 왔으며, 꿈속에서조차 잊고 살기가 불가능했던 나라. 그래서일까? 후지산을 안내해주던 일본인 지인(知人)은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지진’이라고 서슴없이 말해 주었다.

◇리히터 규모 7.2의 대지진이 쓸고간 1995년 고베시. 단 20초 만에 6000여명이 사망했다.
사실, 일본인의 독특함을 이해하려면 그네들의 역사 못지않게 자연도 살펴봐야 한다. 험한 지형을 누비던 고구려인과 평야 민족인 백제인의 기질이 상이(相異)했고, 북한인과 남한인, 호남인과 영남인의 성향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일본에 살면 지진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바쁜 나날 속에 잊고 지내지만 책상과 마루, 침대와 천장이 덜덜 흔들리는 경험이 되풀이되다 보면 어느새 지진에 대한 불안은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게 된다.

◇도쿄의 전철 역 앞에서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인근의 피난 장소 표지판. 재해가 발생하면 피난 장소로 활용되는 공공장소들이 상세하게 표시돼 있다.
이에 관한 필자의 경험담. 어느 날. 식탁에서 저녁을 먼저 먹고 있는데 마루가 양탄자를 위아래로 흔드는 것처럼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부엌에서 있던 아내는 아이들이 뛰노는 줄 알고 뛰지 말라고 소리치다 사태를 파악하고는 금세 파랗게 질려버렸다. 그로부터 몇 주 뒤. 학교에 출근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초음속 비행기가 학교 상공을 지나가는 듯한 굉음과 진동을 느꼈다. 지진임을 직감하며, ‘다음 지진이 오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가운데 몇 초간 오만 가지 생각들을 다 떠올렸다. ‘아이들은 학교에 있을 테니 괜찮을 테고, 집사람이 집에 있다면 15층짜리 건물이라 위험한데, 차라리 밖에 나와 있다면.’

하지만 후에 들은 얘기로 건물 밖에 있어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란다. 큰 지진이면 건물의 유리창이 다 깨져 유리조각이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가운데 빌딩들이 길가를 덮치기에.

그래서일까? 한국의 아파트에 해당하는 일본의 ‘만숀(Mansion)’은 우리네의 주거지와 그 모양새 및 구조가 판이하게 다르다. 우선, 성냥갑처럼 폭이 좁으며 옆으로 긴 한국의 아파트와 달리, 일본의 만숀들은 정사각형이나 기역자 형태로 건물을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크기가 조금 높다 싶은 만숀들은 많은 경우, 위로 올라갈수록 피라미드 모양으로 층 면적을 줄임으로써 내진(耐震)효과를 높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쿄 시내 곳곳에서는 신전 같은 모양의 집들이 태양신을 맞이하는 형국을 자주 연출하고 있다. 지진에 잘 견딜 수 있도록 기둥과 벽을 많이 세우다 보니 주거 공간이 좁아지는 것도 또 다른 특징으로 거론할 수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만션도 현관에서부터 기역자 형태로 만들어진 좁은 통로를 지나야 마루와 안방으로 닿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지진에 견디는 힘을 강하게 하려고 건물을 피라미드형으로 올린 것이 인상적이다. 창문에 그려진 빨간 역삼각형 표시는 탈출구를 표시하는 것으로 소방차가 사다리를 대는 장소이므로 건물 내의 사람들은 이곳으로 모이라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넓고 기둥 없는 텅 빈 공간에 들어서는 일본인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실제로, 지진이 발생할 경우, 건물 안 사람들이 대피장소로 제일 먼저 찾는 곳은 로비나 복도가 아닌 화장실이다. 장소는 좁고 기둥과 칸막이가 많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본인들이기에 한국에 와서 우리나라의 아파트 모양새와 집 크기 및 구조를 들여다보며 대경실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진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일본인들의 생존본능은 예로부터 목재 사용으로 점철돼 왔다. 바위와 흙, 벽돌과 시멘트보다 나무가 외부 충격에 훨씬 강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동경 시내 곳곳에는 언제 지었는지 짐작하기조차 하기 힘든 목조건물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문제는 나무로 지어진 집들이 지진에만 강할 뿐, 냉방은 물론, 소음과 내구성 등에서 무척 취약하다는 것이다. 방바닥에 다다미를 깔았기에 온돌을 들여놓을 수가 없으니 겨울이면 집 전체가 냉장고로 변하는 데다 발걸음을 내디디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세계 최악의 주거 환경은 그렇게 수천년 동안 일본인들의 거주지이자 피난처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지진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나무가 곧잘 화재를 불러들인다는 것. 평지가 적은 일본에서 좁게 지어진 나무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운데, 한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도시 전체가 화마를 입는 비극을 일본 역사는 숱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런 땅에서 사는 일본인들의 비극을 잘 표현한 만화가 ‘드래곤 헤드’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고단샤의 주간지 ‘영매거진’에 연재된 만화에서는 지진과 화산 폭발로 종말을 맞은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좀비처럼 변해버린 군상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문명과 야만은 재난 하나에서부터 갈라진다는 점에서 윌리엄 골딩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1983)을 연상시키는 ‘드래곤 헤드’는 정부도 없는 혼돈 상태에 놓인 인간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미쳐버릴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파리대왕’에 등장하는 영국 소년들은 ‘현실적 가상’에 불과하지만, ‘드래곤 헤드’에 등장하는 일본인 주인공들은 ‘가상적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던 1923년의 간토대지진 당시, 흉흉해진 민심 속에 무려 6000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이 학살당했다. 우물에 독을 풀어 일본인들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흥분한 일본인들이 한국 동포들을 거리로 끌고 나와 죽창 등으로 찔려 죽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란상을 틈타 일본 군부 역시,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 등 눈에 가시 같던 일본인들을 수천 명씩 살해했다.

그래서일까? 2006년 개봉된 영화, ‘열도 침몰’은 일본인들에게 대단히 일본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비록, 해외에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500만명이 극장을 찾은 ‘열도 침몰’은 대지진의 참사를 겪지만 정작 국제사회의 외면으로 일본 정부와 일본인들 스스로가 재난을 극복해 나간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대지진이 발생하면 어쩌죠?”

“그냥 죽는 거죠, 뭐.”

대대손손 지진 열도에서 살아온 일본인들은 그런 의식 속에 오늘도 동네 신사에 들러 하루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일상을 전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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