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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훈 교수의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 역사는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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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1-20 18:29:14 수정 : 2010-01-20 18: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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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천황·수령숭배… 日과 북한은 닮은 꼴 나라 2002년, ‘요코다 메구미’라는 여성의 이름이 전 일본을 뒤흔들었다. 일본 총리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 앞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메구미’ 납치사건을 공개적으로 시인했기 때문이다. 25년 전, 니가타현에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도중 감쪽같이 사라진 중학교 1년생 ‘메구미’양의 납북 의혹이 진실로 판명된 것이다. KAL기 폭발테러범 김현희의 제보 이후, 북한에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며 일본인 납북 사건에 집요하게 매달려온 일본 정부의 끈기가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왜구의 소굴이었던 대만에서 왜구와 전투를 벌이는 명나라 수군의 모습. 16세기 전반 명나라 화가인 구영(仇英)이 그린 그림으로, 도쿄대학출판회의 ‘왜구도권(倭寇圖卷)’에 실려 있다. 당시 왜구는 한반도와 중국 해안은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진출해 무자비한 약탈과 납치를 감행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국민들의 사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안전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는 나라, 그래서 조금이라도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치면 온 열도가 열병을 앓듯 들끓는 나라. 하지만 그런 일본이기에 대북 문제에서 불거져 나오는 온갖 악재들은 평생 짊어져야 할 자신들의 업보라는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민간인 납치의 원조이자 가해자는 언제나 일본이었다. 그것도 북한처럼 17명 정도가 아닌 대규모 수준으로 신라인과 고려인, 조선인과 한국인들을 마구잡이로 납치해 갔다. 해서 동아시아 역사가 개진된 이래, 중국과 한반도는 물론 인도차이나 반도의 해안 주민들에게 왜구로 대표되는 일본인들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늘과 땅 모두 척박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의 끝에 살며 성정이 광폭하기만 한 왜구는 호전성과 잔인함에 있어 북유럽의 ‘바이킹’이 무색한 해적들이었다. 왜구의 ‘구(寇)’자가 노략질을 일삼는 도적떼라는 뜻에서 보듯, 그들의 주된 악행은 노략질에 있었다. 그런 왜구들이 한반도의 해안가를 유린하며 저질렀던 단골 만행이 바로 민간인 납치. 더욱이 이러한 납치극은 세기를 거듭할수록 정도가 심해져서 나중에는 중앙 정부조차 대규모 납치에 동참하게 된다. 바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통해 한반도에서 끌고 간 10만여명의 조선 백성들이 산증인들. 해서 도요토미 정권을 타도한 도쿠가와 막부가 화친과 통상 재개를 요청했을 때, 조선에서 내걸었던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납일 조선인들의 조속한 귀환이었다.

◇도쿄 우에노(上野)공원 역 앞에서는 납북 일본인들을 돕기 위한 모금행사가 1년 내내 열리고 있다. 사진은 납북 문제에 대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는 회원들이 벌이는 서명운동 모습.
그로부터 400년이 흘러 역사는 정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열도에서 일본인들이 감쪽같이 증발하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북조선이 배후자로 지목되는 ‘역사(逆史)’가 시작됐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런 북한의 모습이 비단, 민간인 납치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일본의 지난날과 놀라우리만큼 닮았다는 것.

2003년. 미녀들로만 구성된 북한의 응원단이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방문 장소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올림픽이 열리고 있던 대구. 당시 302명으로 이뤄진 대규모 북한 미녀 응원단은 일거수일투족이 4500만 남한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대회 막판에 한국인들을 환상으로부터 깨어나게 했던 일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김정일 초상화 사건이다. 버스로 이동하는 와중에 길가에 걸린 김정일 초상화가 비에 젖는 것을 본 북한 여성들이 신경질적으로 울고 불며 발작을 일으켰던 것이다.

70년 전 일본 역시, 지금의 북한 모습 그대로였다. 황궁 앞의 다리 사진만 보고도 절을 할 정도로 존경하고 공경해 마지않는 존재가 천황이었다. 어버이보다 소중하고, 하늘보다 높은 대상, 그랬기에 라디오를 통한 천황의 항복선언은 일본 국민에게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그런 천황 숭배가 단지 백성들의 눈물과 경배만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 벽에 건 천황의 사진이 탈까 봐 화재가 난 교사(校舍)로 뛰어들다 불에 타 죽은 교장과 학교 선생님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해마다 내려오는 천황 칙서를 군중과 부대원들 앞에서 읽다가 잘못 발음하는 바람에 자결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납치된 요코다 메구미의 실화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가 2008년 만든 애니메이션. 미국 일본 한국 독일 등 4개국에 영화와 만화책, 비디오와 홍보책자로 배포됐다.
그러고 보면 천왕을 위해 전쟁터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은 그 수가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모두 군국주의 시절의 광풍 속에 국가로 대표되는 한 사람을 위해 살다 간 슬픈 인생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과거 자신이 내보였던 광기를 현재의 북한에서 발견하는 일본은 더더욱 북한의 도발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천황이 하사한 술을 마시고, 미국 항공모함에 뛰어든 게 가미카제 전투기의 일본이라지만, 온 국민이 헐벗어가며 만든 미사일을 일본 열도 위로 날려보내는 것 또한 북한이다. 그런 북한이 미사일이라도 쏠라치면, 온 일본이 그야말로 난리법석이다. 더욱이 첨단 과학기술로 태풍과 해협이라는 자연적 방어막이 걷히면서 오는 불안감은 상대가 북한이라는 사실과 함께 더욱 큰 공포로 다가온다. 물론 이면에는 군사 대국을 향한 당위성 확보의 과장도 있지만, 실제 북한인과 북한에 대해 느끼는 일본의 공포는 과거 한반도가 왜나라 일본에 느꼈던 공포와 다를 바가 없다.

생각하면, 빨간 색을 즐겨 쓰는 것에서부터 인민복 같은 제복을 즐겨 입는 것까지 일본과 북한은 여러 모로 형제 국가다.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음에도 유교라는 종교보다 신도와 공산주의라는 종교로 무장하고 있는 것이나, 조직과 국가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삶 또한 그러하다. 이웃국가들과 화목하지 못해 분란을 자주 일으키고, 주변은 상관치 않는 독자적인 행보 탓에 국제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 것에서도 그러하며, 폐쇄적이고 자국의 이익만 챙기려는 태도 역시 대동소이하다.

더욱이 살아 있는 신에 대한 충성도 경쟁에서 서로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점도 무시하기 힘들다. 그러고 보면, 양국의 국경일 가운데에서 천황과 지도자 동지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인상적이다. 북한의 경우에는 10일 가운데 2일이, 일본은 15일 가운데 5일이 수령 혹은 천황과 관련된 국경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예수와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은 경축해도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은 기념하지 않는 게 우리들이다.

김일성 생가를 방문하고 김일성 동상을 참배해야 하는 북한이나 황궁을 방문하고 신사에서 참배해야 하는 일본은 꼴과 모양에서 합동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일본을 누구보다 미워하는 북한의 현재가 과거의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북한을 아우로 둔 우리네나, 과거의 자신을 북한에서 보는 일본이나 얽히고설킨 인연(緣)이 범상치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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